‘깃 발’-유 치 환-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 시 ‘깃발’ 全文)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으로 상징을 가지고 산다. 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인생의 상징으로 하고 있는가?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예상하면서, 어디까지가, 어디까지를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범위인가를 생각해 본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아는 나를 두고 멀리 까지 가야할 앞길들을 도대체 짐작 조차할 수 없다니, 누구의 말처럼 인생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에 배운 ‘깃발’이라는 시, 당시에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내용을 지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깃발이 삶의 상징이라는 말에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그것은 희망이기도 하고, 열정이기도 하였다. 삶의 고통과 불행 속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상징인 깃발, 바람이 없는 날에 깃발은 펄럭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에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목표와 너의 목표에는 각 개성과 전공, 자신의 취미와 문화적 정서, 직업에 따라서 달라진다. 결혼을 하고 부인에게 말을 했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는 중학교 음악 선생으로 재직할 때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은 당신과 나 그리고 자식들에 알맞은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타인이나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말자---우리들에게 어울리는 가정의 문화를 살려가자’, 나는 분명 내 자신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장차 다가 올 미래가 순탄하지 않을 것에 대비하여 미리 말을 하였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과 돈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분명코 경제적 안정은 필요한 것이면서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쓸 만큼만, 자녀를 공부 시키고 적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1) 훌륭한 가장(아버지 또는 어머니로서)2) 경제적 안정3) 전문 분야에서의 존경4) 직장에서의 인정5) 동료나 인간관계에서의 원만한 관계6) 종교적 생
지난 2008년 11월부터 시작한 ‘예술街의 사색(思索)’이라는 창에 벌써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이 창에 올라간 글 내용들은 나의 하소연만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제주 속에서의 행복과 갈등의 문제들, 예술가로서의 시각을 가지고 느끼는 감상들에 대한 내용으로 엮어져 왔다. 중학교 3학년 초, 적성검사를 받았다. 흔히 아이큐라는 지능검사도 겸하는 검사에서 내가 얼마나 두뇌가 좋은지, 어떠한 일에 적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사였다. 당시의 담임 선생님은 우리 집에 종종 들리셨는데, 선생님 댁이 우리 집을 통과해야 하는 길가였기에 방문의 기회는 잦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선생님이 오시고 한참 뒤에 나를 불러 안방으로 갔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계셨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너는 몇가지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특히나 문학 등 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한다. 그 이외에도 다른 분야의 재능을 말을 했다. 나는 그 이후에 음악을 선택을 했고, 오늘 까지도 그 분야에 계속 몰두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관심도 병행해 왔지만, 제대로운 문학 수업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글을 쓸 때마다 점점 어려워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초등
나는 길을 나설 때면 출발하는 방향의 길과 돌아오는 길을 다르게 한다. 즉 가면서 보는 경치와 돌아 올 때 보는 경치를 다른 지역, 다른 방향으로 보기를 원한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고 오는 길을 다르게 가려 한다.이렇게 다른 길을 걸어가거나 차를 몰고 다니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우리들 주변은 내가 다녔던 길들을 모두 가볼 수는 없어도, 이왕에 길을 나설 때면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마치 산을 오르면서 오르는 길과 내리는 길을 다르게 하는 것처럼, 같은 길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마치 손해 보는 것 같아, 이제는 생활화가 되어 버린 길을 걸어가는 방법은 언제나 신선한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설래임의 나들이를 하는 셈이 된다.갈 때의 경치나 시야는 다른 방향 즉 돌아올 때 반대 방향일 때의 장면들이 다른 새로운 모습일 수는 있으나, 갈 때 보이는 길을 보며 이미 반대 방향으로 보았을 때의 그림을 상상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될 수 있으면 돌아오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나타나면 그 길에는 어떠한 장면들이
근래에 많은 일들이 주변에 발생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만이 아니라 국내외가 시끄럽다. 경제의 어려움은 오늘 내일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가 힘들다는 소리들, 이제는 귀에서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멍하거나 아예 관심을 끊어 버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숱한 조문객과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보도들, 아픔과 억울한 일들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미사일과 핵 발사 실험, 서해안의 위기에 대한 보도가 연일 주변을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한. 아세안 정상회담으로 시야와 귓가는 편안하지 않은 일들에 관한 내용으로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와 일들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행사장으로 달려가면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나를 곰곰이 살펴본다. 도내에는 숱한 언론매체들이 있지만 그 모든 보도나 기사를 다 읽을 수가 없다. 우연하게 나의 손에 안기거나, 마침 TV 앞에 있을 경우에 만나는 화면들, 방송을 듣는 경우는 차를 운행할 때인데 아마도 라디오를 통해서 주변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
요즈음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나 보다 윗분들과의 시간 보다 나 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들을 만나는 시간은 점점 많아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윗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 숫자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늘 내가하는 일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나이가 드는 줄도 모르고 윗분들을 잊고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보다 윗분들과의 대화에서는 인생에서 배울 점도 많고 내 자신이 가야할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나 아랫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배우는 것 보다 자신이 경험하거나 체험한 일들을 소개하고 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면서도 후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들이 쏟아져 나올 때에는 경청하게 되고 내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들의 대화 내용에 감사할 때가 참으로 많다. 필자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다. 내가 하는 일이 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예술 애호가들이 많다. 제주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술인생과 경험의 정도에도 그 경력이
내가 살고 있는 제주 사회, 60여년을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고향 제주에서의 삶은 40여년이 된다. 군 생활, 대학과 대학원, 직장 생활을 한 20여년을 빼면 고향 제주가 좋아서 1989년 8월에 완전히 정착해 버렸다. 고 3시절 부친의 갑작스런 실직(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음)으로 6남 2녀, 8남매의 장래는 참으로 불투명한 것이었다. 대학 진학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대학 진학을 확실하게 접어야 하는 각오와 장차 나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암울한 생활이 계속이 되었다. 직장 생활과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뒤에야 직장 생활을 하면서 푼푼히 모아 둔 비자금으로 대학 시험을 보게 되었다. 입학시험만을 겨우 치룰 정도의 예산을 마련하여 시험을 치루었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음악인으로서 살아가는 보람을 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나간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나에게 어떻게 순간순간의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형과 누나, 주변에서부터 들은 칭찬에서 용기와 힘을 얻었던 것
노래를 들으면 노래를 하는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주자, 지휘자의 연주나 지휘를 해서 울려 퍼지는 합창이나 관현악의 연주를 들으면 연주자, 지휘자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음은 왠만한 음악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일일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분야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소리와 성격에 대한 상관관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반인들(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서 성격과 노래가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친한 관계들 중에 친구 관계들에서는 평소 성격을 잘 이해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노래가 어떻게 불리워 질까에 대해서 무척 궁금했었다. 이러한 이해력은(노래를 듣고 성격을 이해하는 능력) 주변에 거의 없음을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필자의 주변에는 늘 노래가 있는 곳에서는 노래하는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습관처럼 하고 있다.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떠한 노래가 있다. 그 노래 한 곡을 여러 사람이 차례대로 불렀을 때에 표현의 방식이나 목소리의 색깔, 가락에서의 처리 방법, 높낮이와 강약의 처
지난 5월 1일(금)에서부터 3일(일)까지 3일 간, 제주특별자치도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 그리고 광장에서는 제주예술제가 펼쳐졌다. 한국예총 제주특별자치도 연합회가 주최 주관하여 치러진 이번의 행사는 예총 창립 47주년 기념행사를 겸하였다. 기념행사에서는 제주도 예술인상 수상과 예총 발전에 공로가 많으신 분들에 대한 공로패 증정과 감사패를 전달하는 순서가 있었다. 47년 전, 제주예총이 1962년 4월 29일에 창립하고 제주 예술제를 3년 동안 진행하였다. 그 당시의 국내의 정서는 6, 25사변과 일제통치에서의 해방, 4, 3 사건등으로 민심이 흉흉하였고 정부나 지방에서는 민심 수습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제주의 예술인들이 나서서 문학, 미술, 음악의 3개 분야로 예총을 결성하여 도내의 예술 발전과 문화분야의 진흥을 위한 단체로 시작인 된 , 4회 부터는 한라문화제로 명칭이 변경 되면서 예술과 문화의 제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라 문화제에서 탐라 문화제로 이어져 오는 이 행사는 제주의 역사, 문화, 민속, 전통,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 축제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탐라문화제 속의 예술제는 전통과 민속 분
며칠 전 고향에 살던 어머니와 가깝게 지내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들하고는 이웃사촌으로서 너무나도 다정하게 지내셨던 분이다. 그분의 아들과 딸들이 모두 우리 형제들과 친해서 격의 없이 지내왔던 터라 조문을 하러 갔다. 그쪽의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고향을 떠나 육지부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이 많이 모였다. 조문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하면서도 30여년 만에 조우(遭遇)하는 사람들과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객지에서 온갖 고생담을 털어 놓으면서도 지금 떳떳한 직장을 잡아 일가(一家)를 이룬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상황이라든가 직장에서의 업무 등등을 주고 받다가 오래 전 어린 시절의 서로 얽힌 추억으로 대화가 옮겨 간다. 대학시절 고향에 머물고 있었던 잠시의 시간들 중에서 함께 성산 일출봉이나 고향의 들녘, 골짜기, 시내를 오갔던 이야기들, 꿩 사냥을 한답시고 눈이 무릎까지 덮인 마을의 들판을 휘갈아 다녔던 일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청년기에 흔히 질풍노도의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마음 깊숙이 끌어 오르는 정열과 미래에 대한 도전 정신에 관한 내용으로 밤을 지새면서 토론을 펼
제주語를 중심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는 우리들의 정체성의 근원이고, 다양한 특성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재산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인생에 있어서 적극적인 사명과 책임을 최선을 다하게 하는 첫걸음이며 이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과 실용적인 두 가지 목표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제주에 살면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제주도민 모두가 인정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용해 왔으며 사용해야 할 언어가 아닐까? 제주도민 모두가 인정하는 언어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사명과 책임으로 자랑스러운 제주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제주 어는 그동안 표준어에 밀려 오랜 시간 동안 지방 어인 사투리를 사용하는 데에 다소의 문제가 있어왔다. 그것은 도민들이 제주 어에 대한 자긍심과 도민으로서의 긍지를 소유하지 못한 것에도 연유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워낙 제주 어가 육지부 사람들과의 소통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기에 제주 사람들은 표준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현상은 반대로 제주 어를 멀리하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행정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어김없이 꽃나무에는 꽃이 피고 있다. 바야흐로 꽃의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다. 제주에서도 금주 말부터 벛꽃 축제와 유채꽃 축제를 병행하여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이 되는 축제들, 언제 부터인가 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들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축제의 평가와 진단의 항목으로 잡혀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왁자지껄하게 되고 그러한 축제에는 먹 거리와 팔도 각설이들이 모여들어 그들이 펼치는 또 다른 축제의 광장을 기대하고 있기도 한다. 축제의 장은 온통 시끌벅적한 시장을 방불케 한다. 축제의 주제와 의미는 어디론가 간데없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배불리게 하는 일과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에 더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사람들 마다 축제의 평가와 의미는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며, 행사를 추진하는 집행부의 입장에서는 시민들과 참여자들이 모두 신나는 한마당 잔치나 축제를 펼쳐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사고가 없이 무사하게 행사가 끝나기를 염원하기도 한다. 꽃의 축제!제주에는 사계절에 피어나는 꽃들이 참으로 많다. 유채꽃, 벛꽃, 연산홍, 진달
지난 3월 23일(월), 서울 강남 삼성문화센터 공연장에서는 필자의 가곡 발표회가 있었다. (대표 정동기)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우리 가곡 부르기 운동을 실천하는 것으로, 한국의 가곡 진흥과 보급을 위한 행사이다. 지난 달 운동본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용은 3월에 필자를 이 달의 작곡가로 선정하여 서울에서 나의 가곡들을 발표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국내에는 가곡 사이트가 여러 개가 있다. 필자는 많은 사이트를 찾지도 않고 한 개나 두 개 정도가 고작인데, 작곡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곡 사이트에서는 가곡들이 많이 수록이 되어 전국의 가곡 애호가들로부터 감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제주에서 보다는 서울에서 곡을 발표할 기회가 많았는데, 발표의 자리에 사이트를 운영하는 담당자나 가곡 애호가들이 있어서 나의 곡들이 알려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사이트 운영자 측에서 연락이 와서 혹시 작곡자의 곡들이 수록이 된 음반이 있으면 보내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내가 작곡한 가곡들이 인터넷 상에서 알려져 있다는 사실과 이 달의 작곡가로 선정이 되어 발표회 무대를 마련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특히 모든 경비를 주관하는 측에서 부담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수하게 만나는 인간관계들, 이러한 관계들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숱한 사연들을 주고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만남의 여로(旅路)라고들 말한다. 만남은 단순히 만남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평생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고, 좋은 관계였다가 나에게, 너에게 상처를 안겨 주고 남남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남과 인간관계들은 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목표에 접근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어떻게 하면 인간관계와 만남을 원만하게 할 것인가, 중요한 만남을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만남의 철학자인 Martin Buber(1878-1965유태인)의 유명한 저서인 나와 너(Ich und Du)라는 책에서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라고 말하고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나와 너라는 관계와 나와 그것이라는 관계들은 나의 중심에서 탈피하고 열린 마음이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한다. 열린 마음은 서로의 소통이 자유로움을 말한다. 내가 너에게, 아니 서로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인격과 존재 가치의 존엄성을 인지하고 상호 관계를 이어 나가는 그 속에 정상적인 나와 너의 관계가
21세기 한국 시단(詩壇)을 이끄신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인 ‘꽃’이라는 시, 시를 사랑하는 애독자들은 한번쯤은 읽어 보았든지, 기억하든지 암송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구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던 필자도 마침 시인이 대학교 교수로 계셨던 경북대, 영남대가 대구에 있었으니 그 분을 만날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 분이 지은 ‘꽃’이라는 시를 당시만 해도 우리들은 모이기만 하면 암송하는 일이 왜 그리 많았던지, 김춘수 시인의 강연을 들으면 마치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것처럼, 그 후 오랫동안 강의의 내용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꽃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하나의 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 후 ‘꽃’을 보면 나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선 나에게 계속되는 나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