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향에 살던 어머니와 가깝게 지내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들하고는 이웃사촌으로서 너무나도 다정하게 지내셨던 분이다. 그분의 아들과 딸들이 모두 우리 형제들과 친해서 격의 없이 지내왔던 터라 조문을 하러 갔다.
그쪽의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고향을 떠나 육지부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이 많이 모였다. 조문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하면서도 30여년 만에 조우(遭遇)하는 사람들과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객지에서 온갖 고생담을 털어 놓으면서도 지금 떳떳한 직장을 잡아 일가(一家)를 이룬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상황이라든가 직장에서의 업무 등등을 주고 받다가 오래 전 어린 시절의 서로 얽힌 추억으로 대화가 옮겨 간다.
대학시절 고향에 머물고 있었던 잠시의 시간들 중에서 함께 성산 일출봉이나 고향의 들녘, 골짜기, 시내를 오갔던 이야기들, 꿩 사냥을 한답시고 눈이 무릎까지 덮인 마을의 들판을 휘갈아 다녔던 일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청년기에 흔히 질풍노도의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마음 깊숙이 끌어 오르는 정열과 미래에 대한 도전 정신에 관한 내용으로 밤을 지새면서 토론을 펼쳤던 시절들.
사람들은 모두 이처럼 추억을 안고 객지에서 늘 고향의 그리움을 들추고 있을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든가? 추억의 내용에 따라서는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고향이라고는 하나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향에서의 추억이 가장 빛나게 남는 이유는 왜일까?
아름다운 추억이나 기억들에는 반드시 순수함이 묻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추억으로서의 가치가 높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추억은 나 자신에게 많은 용기와 지혜를 준다. 티 없이 맑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 미래에 대한 걱정, 직장과 결혼에 대한 고민들, 부모에 대한 효도, 자신의 이상 실현에 관한 수도 없이 많은 고민들 속에서도 꿈을 버릴 수 없어, 아니 반드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젊은 시절의 기억들이 참으로 오래 동안 펼쳐진다.
나 혼자 마음 깊숙이 남아 있던 기억들, 그러면서도 애지중지하며 사랑하는 나만의 보물처럼 간직한 시간들이 신기하리 만치 하나하나 풀어헤쳐진다. 누구에게나 어린,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그러한 추억이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한다면 지금 당당하게 살아가는 위치와 사회에 떳떳한 일을 할 수 있을 때에 추억은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고생하고 힘이 들었던 만큼 그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후련하리 만치 숨겨둔 비밀을 하나씩 꺼내어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격려한다.
고인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활동하고 살아왔던 고향의 마을 공동 묘지에 안치 되었다. 일이 끝나고 모두들 자신의 일터로, 직장이 있는 각자의 고장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해마다 벌초 시기에는 반드시 고향에 오고는 있지만 바쁜 일정으로 일이 끝나면 곧장 돌아가야 하는 바쁜 현대인들, 내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간혹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찾아봐야할 사람들이 있는지,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대화를 나누어야 할 사람들은 없는지, 이제라도 그런 분들을 찾아 봐야 한다고, 아직도 바쁘다는 이유로 보고 픈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마을은 봄기운에 가득한 연두색, 푸른색으로 나무가지에는 생기가 돋는 표정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인식이 된다. 초가집에서 풍겨 나오는 연기, 아마도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지금은 집집마다 가스랜지와 전기밥솥으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마 쓰레기나 잡초들을 태우고 있을 것이다. 연기는 고요한 마을의 하늘을 서서히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간다. 고즈넉한 고향 마을의 풍경을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마을 내려오면서 해마다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 마다 집을 찾게 되는데 형제와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반성을 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명절과 제사 때는 어김없이 모여드는 친척과 형제들, 아마도 조상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나누게 할 고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친척과 가족들,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반드시 만나게 할 방안을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실현 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조상들이 후손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가족친지들이 자주 만나고 희망과 서로의 행복을 위하여 상부상조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생에는 만남의 기회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오늘처럼 만남이 소중하게 이해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만남의 시간들 속에서 그 만남을 더욱 소중하게 보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망인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얻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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