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의 시간, 서귀포 송산동 ‘소남머리’에 서다
서귀포시 송산동 주무관 강지향

서귀포시 송산동에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독특한 지형,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가 깃든 명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소남머리’는 유독 특별한 장소다.
제주에서조차 깊이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자연의 예술품이자, 지역민의 삶과 추억이 서린 공간이다.
‘소남머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 지형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설, 또 다른 하나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던 동산(제주어로 ‘머리’는 동산, 언덕을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위의 육중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해안을 감싸며 특별한 풍광을 보여주고,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남머리 너머로 탁 트인 남쪽 바다가 펼쳐진다.
해 질 무렵이면 황금빛 노을이 바위와 바다를 물들여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남머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에 그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어민들은 소남머리를 풍향과 조수의 변화를 읽는 이정표로 삼았고, 아이들에게는 뛰놀던 놀이터이자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이곳 해안선 가까이에는 천연 담수욕장도 자리잡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고, 때로는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계절마다 표정이 다른 소남머리는, 때로는 태풍의 파도를 막아내며, 때로는 잔잔한 바다 위로 햇살을 머금으며 세월을 견뎌왔다.
최근에는 해안 산책로가 조성되어 누구나 소남머리 부근을 걸으며 제주의 바다와 암벽이 이루는 조화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각박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소남머리는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느끼게 해주는 자연 속 쉼터가 되어준다.
길지 않은 산책이지만, 소남머리에서 잠시 머물러 파도 소리를 들으면 자연이 주는 위안과 제주 특유의 여유로움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소남머리가 지켜온 옛 모습과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