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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자라는 것 보려면 밝게 살아야죠”

부모와 ‘추석’ 함께 할수 없는 두 남동생 돌보는 여고생 소녀가장

고등학교 3학년인 경희(18.가명)는 든든한 체격이지만 얼굴 한 구석에는 그늘이 있어 보였다.
항상 생활비에, 동생들 걱정 때문에 근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희를 찾아갔다.
“잘 찾아 오셨네요” 마당에서 경희가 인사를 건넸다.

중학교 2학년 때 어쩔 수 없이 소녀가장 ‘벌써 4년’

반갑게 맞아주는 경희의 얼굴 뒤로 언제한지 모를 집 외벽 페인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간 방 안에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경희의 두 남동생은 집에 없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조그만 집. 마당을 벗어나면 산방산이 보이는 그 곳에서 경희의 두 남동생이, 경희는 바로 옆 창고를 개조한 방에서 살고 있다.

아빠는 간경화로 5년 전 세상을 떠났으며, 엄마는 그 다음해 아이들만 남겨 놓고 집을 나갔다. 경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소녀가장이 돼 버렸다.
“처음에 막내 동생은 엄마 보고 싶다며 막 울었어요. 그 때마다 신경질 나고, 원망도 많이 했어요”
어느 덧 엄마 없이 산지도 4년이 흘렀다.

 
많지 않은 돈 때문에 쩔쩔매는 엄마 생각에 그만 눈물이

경희가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을 조심스레 꺼냈다.

“엄마가 전화 와서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중학교 3학년인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도둑질 하다 그만 파출소에 끌려가는 바람에...”
엄마가 필요한 돈은 합의금이었던 것.

당시를 회상하던 경희는 갑자기 감정이 복 받쳤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결국 엄마에게 드렸지만 그리 많지도 않은 합의금 때문에 쩔쩔매는 엄마의 행동을 경희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사고’친 동생 때문에 누나로서 가슴도 아팠다.

여성전용 피부마사지 숍 갖는 게 소망...그 소망 위해 매일 아르바이트

경희는 처음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었다.
“생활비도 없는데 졸업하자마자 취직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대학에서 대출 받고 20년 후에 갚아도 된다는 제도가 있어서 진학하기로 했어요”

경희는 피부미용과에 입학할 생각이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 마사지를 많이 해 줬는데 그 때마다 친구들이 ‘시원하다’며 잘 한다고 하고, 개인적으로도 마사지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고 싶어요”

여성 전용 피부 마사지 숍을 갖고 싶다는 경희의 앞날에 대한 계획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경희네는 면사무소에서 매달 6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그러나 전기. 수도요금에 생활비와 차비 등 이것저것하다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경희는 지난 7월부터 집 근처 횟집에서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대학등록금도 내야 하고, 동생들 용돈을 줄려니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겠더라고요. 매달 10만 원 이상씩은 꼭 저축하고 있어요”

‘동생들, 착하고 바르게’, ‘엄마, 행복하게 건강하게’ 또 다른 경희의 소망

아침을 준비한 뒤 동생들을 깨우고, 등교를 위해 오전 6시면 눈을 뜬다는 경희. ‘살림꾼’이 다 됐다.
“학교 갔다 오고 나면 아르바이트 때문에 동생들 저녁 차려줄 시간이 없어 미안해요.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는데 잘 먹지 않는 것 같아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 밀린 빨래나 설거지 등을 하고 나면 자정이 넘어 눈을 감지만 요즘은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엄마와 전화 통화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몰래 울기도 해요. 그렇지만 지금은 착하고, 바르게 자라야 할 동생들 돌봐야 하는, 하나밖에 없는 누나니까 씩씩하고 밝게 살아야죠”

추석 때 경희의 두 동생들은 멀지 않은 외할머니 집에 엄마를 만나러 갈 계획이다.
그러나 경희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와 앙금은 아직도 남아있고,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우리들 걱정하지 말고 제발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동생들이 착하게 자라주는 것과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것. 추석을 앞둔 경희의 또 다른 소망이다.

 

소녀가장 여고생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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