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청탁금지법 ‘0-0-0’
서홍동 주무관 이지훈
“부정청탁, 금품 등의 수수를 근절하여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햇수로 9년이 지났다.
법이 시행된 2016년 당시 나는 공무원 면접시험을 준비하면서 청탁금지법을 처음 접했다. 당시 사회 이슈 중 하나였기 때문에 면접질문으로 반드시 등장할 것으로 생각해서 각 조항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조항이 하나 있었는데 청탁금지법 시행령 제17조, 일명 ‘3-5-10 조항’이다. 원칙적으로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금지하되 원활한 직무수행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의 금품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근절’이라는 법 제정 취지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여 의아한 마음에 이유를 찾아보니 청탁금지법이 지닌 청렴의 가치를 견지하면서도 사회·경제적 상황, 국민 소비 패턴 등을 고려하여 예외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다보니, 이 ‘3-5-10 조항’은 지난 9년간 여러차례 변화를 거듭해왔다. 현행법은 ‘3-5-5’로 유지중이며 예외로 농·수·축산품으로 선물하는 경우 15만원까지 가능하되 시행령 제17조 제2항에 따른 명절기간에는 이에 2배인 30만원까지 가능하도록 되었다.
계속된 변화 속에서 언젠가 한가지 다짐을 했다.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나에게 청탁금지법 시행령 제17조는 ‘0-0-0’이 되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당당하기 위한 나와의 약속이었다.
문득 지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작년 계약부서에서 근무하던 시절, 업무시간이 끝나갈 무렵 한 업체 직원이 방문하자 여느 때처럼 서류를 접수받고 문제없다는 의미로 꾸벅 인사를 드리는데 대뜸 잠깐 복도에서 얘기 좀 할 수 있느냐 묻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니 업체 대표가 서 있었고, 환한 얼굴로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명절 전 서류제출이 늦었음에도 계약대금 지급을 신속하게 처리해줘서 무사히 명절을 쇨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감사표시에 뿌듯해하던 찰나 종이가방 하나가 나에게 전해진다.
한우세트란다. 공사가 잘 마무리된 것에 대한 감사의미로 주는 것이고, ‘법’에 문제되지 않는 금액의 선물이니 아무 문제 없을 거란다.
그러나 나에게 법에 문제가 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을 받음으로써 앞으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그 종이가방을 정중히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나의 다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언젠가 시청 건물 어딘가에서 청렴 관련 명언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작은 이익을 욕심내지 마라. 큰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 명언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앞으로의 공직생활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