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대한민국의 5월은 특히 그렇다.
대한민국의 5월은 1일 ‘근로자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기념일로 시작된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시위에서 비롯된 노동절’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이날을 기리는 데 반해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말한다.
‘조국번영’의 기치아래 전 국민을 한 방향으로 몰았던 독재정권은 11월 어느 날을 ‘근로자의 날’로 정해 5월 1일 ‘노동절’을 지웠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며 근로자의 날 대신 ‘노동절’을 기념하는 추세가 늘어나는 와중에 11월의 근로자의 날은 언제부턴가 5월 1일 노동절의 자리를 꿰찼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을 존중하며 주체적인’ 노동자는 아직도 이 나라의 기득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단어인가 보다.
사실 이 기득권이라는 단어도 ‘친일 세력’이라는 말을 쓰면 권력에 호되게 당해야 했던 1950년대 말부터 눈치를 보면서 사용된 것이라 하니 한숨만 나온다.
이달 10일은 1948년 남한 총선거가 단행된 날이다.
이로부터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리게 됐고 2년이 지나 ‘동족상잔’의 쓰라린 경험을 강요 당하게 된다.
3개 지역구 중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며 투표거부에 돌입한 제주도민은 2개 지역구 선거를 무효화 시키며 항의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다.
4.3이 진행되던 시절,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들은 ‘제주 섬은 빨갱이가 사는 동네’라면서 섬 전체를 불태우고 도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16일은 박정희 군부 일파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누가 원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국민의 부름’을 받아 나왔다는 군인들은 민주주의 시계를 멈추게 했다.
18년의 군사독재가 이어진 후 박정희를 숭상하던 또 다른 젊은 군인들은 그의 선배를 쫒아 서울의 봄을 갈기갈기 찢었다.
광주민주화운동도 5월 18일 발생했다.
박정희의 후예인 전두환 일당은 광주 시민들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정권을 침탈하기에 이른다.
5월의 막바지인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둔 날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진학도 하지 못한 채 사법고시에 합격한 자수성가의 인간.
자신만 잘 먹고 잘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노동현장의 앞줄에 섰던 변호인.
3당 합당이라는 초유의 민간 쿠데타에 반발, 가시밭길을 자처했던 정치인.
‘기득권’들에게 ‘무슨 고졸이 대통령을,,,’이라는 비웃음을 참아가면서 ‘옳고 그름이 승리하는 참된 역사를 가진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선구자.
그러나 그는 23일 그를 미워하는 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은 즐거워해야 할 기념일임은 분명하다.
지난해부터 가뜩이나 나쁜 경제상황은 시민들의 텅 빈 주머니만 만지작거리게 한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조카들이나 부모님 뵙기가 민망할 따름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의 5월은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