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은 우리나라 예비군이 창설돼 군사작전 및 대민지원 임무를 수행한지 40돌을 맞이하는 날이다. 그동안 예비군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범국민적 자유방위의 역군으로서 그 사명과 이념에 맞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왔다.
다시 설명하면 1968년 1.21사태가 결정적인 동기가 되어 1968년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되어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최초로 작전에 참가, 많은 성과를 거양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재해복구 지원을 비롯해 수십 횟수의 대간첩작전에 투입되어 빛나는 업적을 세우는 등 안보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다해 온 것이다.
그러나 예비군이 지금까지 수행해 온 역할에 비해 신세대 젊은이들은 예비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어 병무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에 우리 예비군의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다시 한번 예비군의 창설의 의미와 예비전력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예비군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예비군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경당제도나 고려의 광군, 조선시대의 민보방위체제가 대표적인 제도이다. 이는 병ㆍ농 합일개념에 의해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에 자위력을 발휘했던 시민군제도로 이미 우리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광복 이후 건국 및 6ㆍ25전쟁의 혼란과 국가재건의 어려운 상황을 거치면서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예비전력 확보에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예비군 창설의 법적 근거인 향토예비군설치법을 이미 1961년에 제정했을 만큼 예비전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공감하였으나 국가의 재건이 우선이었고, 사회현실도 따라주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은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을 설정하여 빈번하게 직접적인 도발을 감행하고, 1.21사태나 울진 무장공비 사건과 같은 도발을 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한 예비전력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부터 우리의 향토와 나라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1968년 4월 1일 범국민적이고 전국적인 조직으로 예비군을 창설하게 되었다.
예비전력을 육성하고 유지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성에 있다. 만약 국가가 부유하다면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상비전력을 보유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戰)후 국가재건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예비전력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예비군을 창설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범국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국방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60만 상비전력 외에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예비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40살의 완숙한 장년으로 성장한 예비군! 최근의 안보환경과 군사력의 변화추세를 고려해 볼 때 예비군의 역할이 점증하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예비군 전력을 정예화하기 위해 복무환경개선 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우리 모두도 국가안보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복무하고 있는 예비군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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