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봄이...아직 바깥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조금은 쌀쌀한 기온이지만, 분명 계절은 어김없이 봄기운이 여실하다. 자연의 순환 호흡은 인간에게 너무도 확실함을 보여 준다. 겨울 다음에 찾아주는 계절인 봄은 우리들 앞에 성큼 다가서 있다. 지나간 겨울의 긴 추위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봄, 진정으로 기다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계절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 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봄이란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다. 겨울이나 다른 계절에도 일을 시작하지만 봄에 그 무엇을 하려 하는 의미는 그만큼 적절한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봄에 시작하는 일들을 보면 오랜 동안 학교가 입학식을 하고, 신학기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 사람들에게는 시작한다는 오랜 역사와 함께한 뿌리 깊은 문화가 아닐까? 자녀들만의 시작이 아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신학기에 맞춘 각종 사업들,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봄이라는 의미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봄이라는 의미가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면 그 시작의 의미 속에 담겨진 다양한 세계를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기뻐하
인생을 살다 보면 수도 없는 나날들이 해가 지고 또다시 해가 뜨는 것을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반복되는 날들 속에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들, 날이 지기 위해선---이라는 말은 어둠을 기다린다고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날이지는 것인가? 라는 데에 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순한 하루의 어둠을 말하는 것일까? 해가 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해가 있어서 그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해가 사라지고 나면 간절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까? 어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세계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세계가 밝은 세계에 집중되어 있어서 어둠의 세계가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세계이며, 어쩌면 어둠의 세계에 전혀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 신동집 님의 시, ‘날이 지기 위해선---’을 살펴 보자‘날이 지기 위해선’-신 동 집- 날이 지기 위해선한 사람의 들판이 저물어야 한다수많은 사람의 날은 저물어도상기 남은 한 사람의 들판, 해 그늘은 황망히 밀어 닥치고으시시 언저리는 어둡다이러할 때 사람은 무엇을 잃어야 하나한 사람의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야 하나갓 돋은
이미 결혼식에서 주례를 한 지도 꽤 많은 회수를 지냈다. 그동안 제자들, 지인의 부탁과 친구들 자녀의 결혼식 주례를 하면서 주례사의 내용들을 조금씩 다르게 해 왔지만 공통적인 내용들은 세 가지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 세 가지 소리가 나와야 하며, 그 소리가 잘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미래가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고 짐작을 하곤 했다고 한다. 첫째는 아기의 울음소리이다.아기의 울음소리는 자식이 집안에 있음을 의미하고, 자식은 즉 부부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자식의 존재를 의미하며 부부의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자식이 있는 집은 부부가, 부모가 열심히 일을 하는 의미와 목표일 수가 있다. 자식이 있는 집은 삶의 희망과 비전을 끊임 없이할 수 있으며, 자식이 없는 가정에서는 부부가 하루 종일 마주 앉아 다정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붑 간에 대화의 폭을 넓히는 것 그것은 자식이 있을 때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식이 있어서 언제나 기쁨과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식으로 인해서 많은 고통과 슬픔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은 우리 어른들의 미래인 것만은 확실하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릭 프롬(Erich From)의 저서인 '사랑의 기술(Love is Art)에서 인간이 사랑을 하려고 애를 써도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를 사랑에 대한 기술의 미숙성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이 저서의 책명은 The art of loving 즉 ‘사랑하기의 기술’ 혹은 기예(Art)라고 하여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프롬은 인간이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데, 첫째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 받기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점, 둘째로 자신이 사랑하는 능력 보다는 사랑하는 대상을 얻고자 하는 문제, 셋째로 사랑을 막 시작 하려할 때 순간의 강렬한 감정만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점, 이 때문에 많은 사랑의 오류가 발생한다고 한다. 음악이나 그림, 건축, 서예, 문학 등과 같이 넓은 의미의 기술처럼 예술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작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기술을 익히고 배워 가면서 예술을 높여 나아가는 것처럼 사랑도 기술을 익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Art의 어원인 희랍어의 테크네(영어의 Technic)는 예술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기술
경제 한파가 한국사회를 凍土로 만들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동일한 병에 신음하고 있다. 아직 따스한 기온을 받기에는 몇 달이 더 지나야 할 것 같은데 주위는 아직도 추운 겨울이다. 대학에는 중도 탈락자들이 비일비재하고 대학 진학자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라는 바탕이 튼실해야 각 가정과 사회 모두가 건강할 수 있을 터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술계에는 이보다 더 먼저 한파가 있었다. 아니 예술계에 봄이 언제 왔었던가? 제주 사회는 경제! 경제! 를 부르짖으면서 도민들을 경제 전문가로, 아니 경제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기회나 여유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예술은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연한 노오란 새싹을 세상에 빼곰히 속을 드러내지만 경제라는 인간의 욕심과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그저 시들어 버리기가 십상이다. 꽃을 보기도 전에 사그라지는 꿈의 세계인 예술들, 어쩌면 작품만이 아니라 창작 욕구와 삶의 의욕과 열정들도 경제라는 너무나도 큰 벽 앞에 산산히 무너지는 장면들을 우리는 직시하면서도, 경제 제일주의는 오늘도 제주화두의 맨 선두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 마치 경제 이외에는 다른 해결 방안이 하나도 없다는
설을 하루 앞둔 시간, 혼자서 연구실에 우두커니 앉아 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래 전 고향에서의 겨울이 생각이 난다.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 대구에서의 오랜 시간을 보내고 고향에서 후진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중등교사로의 길을 선택하고 순위 고사를 보고 합격 여부와 발령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의 일이다. 고향 성읍리(표선면)에는 눈이 곧잘 내렸다. 한번 내리는 눈은 잘 녹지 않아 길은 빙판이 되는 일이 십상이었다. 산골이라 차도 하루에 한두 번 다닐 뿐 정적이 하루 종일 흐르는 그런 산골이었다. 3개월은 족히 산골에 묻혀 살면서 한편 지루하기도 하지만, 고요한 그곳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을 수필이나 시를 일기를 쓰면서,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때로는 버스에 올라 성산 일출봉(과거에는 그곳에 리라 호텔 커피 숍이 있었음)으로 발길을 옮겨 동쪽에서 바라 보는 한라산과 제주의 긴 장면을 즐기곤 했다. 눈이 쌓인 오조리 양어장과 백사장, 검은 색깔을 한 시퍼런 출렁이는 바다, 동쪽으로는 우도가 보이고 마음을 정리한다고 길을 나선 나는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 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타입이나 내가 없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선호하는 일 중에 내가 애를 써왔던 그러나 나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다만 나에게 비추어 봐서 나에게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돋보인다거나 뛰어난 것일 경우에도 관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존경으로 변하기도 한다. 관심이거나 존경은 내 자신이 생각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며, 어떠한 경우라도 나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 우선 나를 돌아보는 일, 나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내가 인생에서 가고가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그 길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은 어떠한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과연 나는 그 길을 계속갈 수 있는지---등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길을 나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어
예술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친구들과 이웃들, 직장의 동료와 선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일반인들과 달리 살아가야 하는,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많다. 내 자신은 타인들과 똑 같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별 생각 없이 해 오면서,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음악사를 공부하면서, 한 시대를 이끌어 온 위대한 음악가들의 업적과 생활, 예술적 인생을 더듬다 보면 오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자신과 비교하면서 퍽이나 다른 삶을 살아갔음을 알게 된다. 러시아 작곡가인 챠이코프스키는 생전에 친구에게 남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작곡가는 일반인(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괴롭고 슬픈 상황에서도 기쁨과 행복, 희망을 창조해야 하며, 반대로 기쁘고 행복해 있을 때에도 비참과 슬픔을 노래할 수 있어야한다’. 대학 시절에 읽은 내용이다. 그 이후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고향 제주에 머물며 작곡가로 살아가면서 챠이코프스키의 말을 점점 신뢰하게 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제주에는 한 평생 작곡가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귀하다. 작곡가라고 하면 마치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이었기에 관사에서 살게 되었다. 1, 2학년은 남원읍 신흥에 위치한 흥산초등학교를, 3, 4, 5학년은 서귀초등학교, 5, 6학년은 성산 시흥초등학교, 이렇게 세 학교를 다섯 차례나 옮기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관사에 살았던 곳은 흥산과 시흥초등학교 시절이다.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5, 6학년을 보냈던 시흥초등학교이다. 운동장 끝으로는 담을 쌓아 있었는데 동쪽의 담 밖은 양어장이고, 양어장을 지나면 바다와 연결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을 담게 한 시절이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 양어장에는 숭어의 치어(鯔魚)들이 꽁꽁 얼어 덩어리가 되어 있을 때에 치어 덩어리를 가져다가 온돌방에 조그마한 멍석 같은 넓은 깔판에 얼어있는 덩어리를 놔두면 어름은 이내 풀리고 치어들은 마치 멸치처럼 볕에 말려 씹어 먹었던 추억, 양어장에는 철새들이 많이 날아와 먹이를 찾곤 했는데, 동네의 형들은 콩 속을 후벼 속에 극약(싸이나)을 조금 넣어 촛물로 구멍을 봉한다. 봉한 콩들을 양어장 모래 위나 마른 흙 위에 뿌려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에 돌아보면
아침에 일어나니 사방이 온통 흰 눈이다. 간밤에 아홉시 뉴스에도 밤중에 눈이 온다고 하였는데 자정까지도 오지 않던 눈이 내가 깊이 자는 사이에 조용히 내렸는가 보다. 출근을 서두르면서 바깥을 보니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마을과 바다가 온통 흰 눈에 덮여 있다. 삼나무는 눈 흰 모자를, 동백나무는 송이송이 눈꽃 송이를 만들고 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바람이 세차게 지나간다. 지난주에는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국제 예술 경연대회에 주최 측의 초청으로 4박 5일 간 머무는 말레이시아는 사방이 온통 초록색이다. 연중섭씨 18도에서 24도의 기후로 인해 우리나라처럼 가을이 없다. 아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있어도 우리처럼 계절 감각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4일간을 지내면서 가을이라 해도 단풍이 전혀 없는 초록색만이 있는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인천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온 몸을 휘갈아 가자 ‘아!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오랜 동안 살아 온 생활환경은 이렇게 내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생활관과 인생의 모든 것들을 변화하게 만든다. 분명 따뜻한 온도가 나에게 맞을 것 같
제주에는 민요가 약 1,400여곡이 남아 있다. 해방 전에 만들어진 이 민요들은 순수 제주도민들에 의해 창작이 되어 진 작품들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생활 속에서 음악(소리)을 좋아했고, 시(노랫 말)를 짓기를 즐겨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방 후 제주도민들에 의해 작사, 작곡, 노래가 된 작품은 한 작품도 남아 있지가 않다. 설령 있다고 하드라도(삼다도 소식, 서귀포 칠십리, 감수광 등) 제주 출신이 아닌 육지부 출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대다수이다. 이렇게 된 배경은 해방 후 제주에서의 교육은 지나치게 표준어 사용을 강요한 교육에 문제가 있겠지만, 학교에서 조차 제주어(제주 사투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일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에 제주어를 사용하면 마치 무식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아 사용함에 있어서 조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제주의 특성과 정체성의 많은 복합적인 문화와 정신의 문제를 표준어로 묶어 버린 잘못 된 정책으로 하여 제주도민들은 잠시 제주어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참 베지근허다’라는 말이 있다. 제주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표준어로
어린 시절, 동네 친구 집에는 우물이 있었다. 수도가 없는 시절이라 아침 일찍 또는 오후에는 밥을 지을 물을 동네 먼 밖에 까지 걸어가서 양동이를 지게에 지고 실어 날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밥을 해먹기 위한 물이지만 때로는 세수도 하고 식사 후에 그릇을 씻기 위해서 물을 사용할 때면 물이 아까워서(물이 부족하면 또 다시 길러 가야하기에) 아껴서 사용해야 했던 시절, 여름이면 동네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친구 집에 몰려가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서로의 등목을 씻겨주면 시원하기도 하고 물을 길러 동네 밖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부럽기 까지 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은 참으로 신나는 것이었다, 두레박에는 끈이 달여 있어서 한참이나 우물 깊숙이 내려가고 왼쪽 오른 쪽으로 빙빙 돌려 두레박이 물속으로 들어가게 한 뒤에 물을 기어 올렸다. 손을 바닥에 짚고 등목으로 할 때면 여름이지만 차가운 우물물로 더위와 땀이 금새 사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어린 시절이지만 그 두레박에는 많은 꿈과 희망을 담고 자꾸만 물을 퍼 올렸던 것이다. 땀을 흘리면서 신나게 살아갔던 그때의 시간들은 두레박이 있어서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시원한 우물물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는
숱한 음악을 들으면서 살아간다. 어린 시절에는 제대로운 음악 감상을 하기에는 여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여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 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감상(感想)의 시작이었다. 감상의 경험 중에 필자의 주변은 다른 사람보다는 그나마 좋은 환경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이었기에 부친이 전근을 따라 학교를 옮겨 다녔는데 남원의 흥산초등학교, 서귀초등학교, 성산 시흥초등학교, 서귀중, 오현고를 다니면서 그때마다 달라진 환경은 늘 새로운 자연과 제주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간혹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신비로운 세계 같은 매력을 느꼈으며 대중가요에 비하여 무언가 다른 클래식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클래식을 자주 접하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음악 수업에 음악 감상용 이동 전축이 음악실에 있었는데, 필자는 음악부원이어서 자유롭게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도 가장 기억이 나는 음악은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일명 ‘운명 교향곡’이다. 귀가 닳도록 1악장에서 4악장 까지 반복해서 감상을 했다. 다음으로 감상한 것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잊을 수 없는 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이 승부의 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학급에서 학업성적이나 다른 운동, 그림, 노래, 장기자랑, 발표 등등 숱한 과정에서 승부는 계속 되어 왔다. 고등학교 까지는 학업 성적에 억눌려 다른 분야에 관심이나 취미가 있다고 하여도 학교에서는 그러한 분야에는 별로 칭찬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 다수의 선생님들은 오직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관심이 가고 그러기에 공부를 잘하지 못한 학생들은 아예 공부에 대한 승부에서 탈락하기 마련이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공부 보다는 내가 택한 전공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택한 전공에서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승부를 건다. 그러나 어떠한 분야에서건 승부는 존재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도 1등, 2등---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결혼을 할 때에도, 직장을 정할 때에도,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할 때에도,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노력들이 내가 살아왔던 승부가 반복 되는 인생, 사람은 승부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은 늘 생활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승부욕은 인간과 이 사회,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승부욕이 지
플러스 알파(Plus alpha) 인생 내가 다니는 길에는 벛나무 가로수가 있다. 벛나무 뒤로는 삼나무와 소나무가 있어서 초록색의 배경과 멀리로는 오름과 한라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바다의 파란색이 어우러져 그 상태로만 해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 쉴사이 없이 변모되는 색깔은 길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을 주고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벛나무 잎들은 노랗게, 진홍빛, 황갈색 등으로 변하면서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배경은 언제나 초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연의 한가로움들, 늘 지나다니는 길을 걸으며 인생도 이러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말한 내용을 주의 깊게 들었던 기억을 들추어낸다. ‘여러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전공을 깊게 하면서도 타 분야에 대한 관심과 교양이 자신의 전공을 더욱 가치 있게 한다’라는 이야기가 새삼 필요한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우리들 주변에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면서 타 분야에 대한 관심을 둘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또는 가깝게 하기 위해서 타 분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