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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자이자 음악평론가인 예총 강문칠 제주연합회장 |
단순한 하루의 어둠을 말하는 것일까? 해가 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해가 있어서 그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해가 사라지고 나면 간절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까? 어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세계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세계가 밝은 세계에 집중되어 있어서 어둠의 세계가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세계이며, 어쩌면 어둠의 세계에 전혀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날이 지기 위해선’
-신 동 집-
날이 지기 위해선
한 사람의 들판이 저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날은 저물어도
상기 남은 한 사람의 들판,
해 그늘은 황망히 밀어 닥치고
으시시 언저리는 어둡다
이러할 때 사람은 무엇을 잃어야 하나
한 사람의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야 하나
갓 돋은 저
별을 맞이하기 위해선
-신동집 詩 <날이 지기 위해선> 전문-
필자는 나름으로의 시를 해석해 본다. 내 개인의 인생과 생활, 내가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경험한 다양한 인간관계와 자연과 신의 문제들을 바탕으로, 미래에의 세계에 대한 내 자신의 전망과 목표,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철학 서적과 문학, 역사와 세계사, 예술에 관련한 경험하고 체험한 바를 토대로 현실과 이상 속에서 수도 없는 갈등을 안고 살아 온 자신의 길을 돌아본다.
음악의 길,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 학교에서 음악 수업 시간이면 노래하는 것이 좋았고 배우거나 알고 있는 노래들을 집에서나 밖에서 있을 때면 언제나 노래와 함께했던 시절, 바닷가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은 노래할 때 마다 언제나 바다가 나오는 노래가 등장한다.
‘엄마가 섬 그늘에’로 시작하는 <섬 집 아기>, ‘우리나라 남쪽의 막내둥인가’로 시작하는 <제주도>등 바다를 바라보며 마냥 즐겁게 지나온 시절, 고등학교를 다니는 누나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음악에 관심 있는 나에게 집중적으로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가르쳐준 ‘그대는 아는 가 저 남쪽 나라를’이라는 토마스의 이탈리아 노래들---이러한 과정들은 단순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욕구, 목마름을 달래기도 하지만 더욱 음악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곤 했다.
그러한 시절에는 바다를 건너 산 넘어 해가 질 때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서귀포는 점차로 고요 속으로 젖어들고 어둠이 밀려오면 이러한 낮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서 어둠이 좋았다. 낮이건 밤이건 나에게 있어서 음악은 전혀 무관한, 다른 세계이지만 그러한 만큼 분위기에 알맞은 음악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었다.
계절과 아침, 낮, 저녁, 밤에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는 것에 별 생각 없이 지나온 시절, 그로부터 얼마나 지나온 것일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음악,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의 순수한 음악의 세계에 대한 이상과 현실 속의 음악들과 깊은 괴리감(乖離感)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갈등들이 음악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과 젊은 청년기를 지나오면서 경험한 수도 없는 날들, 그 안에 수도 없이 날이 지고 어둠이 오고 그리고는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아직은 내가 버려야할 것에 전혀 마음을 둘 수 없었던 욕구이거나 무지한 시간들, 어떻게 반복이 되는 시간들 속에서 이익과 욕심, 자신의 출세 만에 함몰되어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인가?
‘날이 지기 위해선’ 나의 그 무엇을 잃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귀한 나의 것을 과감히 버릴 수가 있을까,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낮과 밤을 함께 소유한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욕심일까? 지나친 과욕으로 나에게는 전혀 어둠이, 나의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인 밤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나는 낮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인생에서 자연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날이 지기 위해선 밝음이, 태양이, 다른 희망과 세계를 위하여 지금 지니고 있는 욕심과 욕구들을 잠시 버려야 하는 것인가? 어둠이 오면 어떠한 세계가 있길 래---해가 지고 밝음이 사라지면 우리들에게는 고요한 어둠이 등장한다. 갓 돋은 샛별이 나타나고 무수한 은하수와 밝은 달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낮에는 전혀 만나 볼 수 없는 세상, 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교차하는 세상 속에서 이론과 학문과 경험에서 체득한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순리를 빗겨난 인생의 이론과 지식들이 우리들 안에 너무나 많은 욕심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갓 돋은 저별은 자신의 희망이며 구원의 세계로 보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가장 귀한 태양을 버리고, 밝음을 잃어 버려야만 만나는 별, 나에게 있어서 날이 지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가장 귀한 내가 소유한 것은 무엇인지, 갓 돋을 저 별을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인지를 오늘 조용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나에게 지나치게 몰두하여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욕심들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어둠 속의 아름다움과 샛별과 달과 은하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새로운 세계들이 자신을 향해서 무수하게 밀려오곤 한다. 욕심 안에 있기에 새로운 세계는 스쳐지나가고 내가 발견하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오늘도 계속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들판이 저물어야만 날이 지고, 샛별이 오는 것임을, 나의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야만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상, 그때에 겪는 으시시 언저리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그 후에 기대하는 또 다른 희망과 세계를 만난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새벽 다음에 아침, 낮과 저녁, 어둠과 밤이라는 자연의 순리 안에 살아가고 있기에,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버림에 익숙한 인생이어야 하며, 그것에 대하여 서운함과 아픔들이 자연스러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