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칼은 날카롭다.
가장 아픈 곳만을 골라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들이 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단말마의 비명을 깊은 한숨에 감추고 있다.
그들이 가진 칼은 역사적으로도 오랜 사악한 검이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조차 없다.
먹고 살겠다면서 떨쳐 일어난 이 나라의 민중을 죽여 달라며 일본군을 불러 숱한 동학농민을 학살한 조선 말 고종의 잔인함을 살펴보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해방 정국에서 미군정과 손을 잡고 패망한 일본의 앞잡이들을 다시 살려내 4.3 제주도민을 포함해 여수.순천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음으로 내몬 세력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한강다리를 끊고 저 혼자 남쪽으로 도망친 후 서울이 수복되자 미처 도망치지 못한 시민들에게 ‘부역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한 인사를 존경한다는 세력들도 이 사회의 기득권으로 행세하고 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망치고 평생 집권을 획책한 일단의 군인무리들, 그 뒤를 이은 후배 군인들에 의한 광주의 희생.
이들의 뒤를 이은 무리들에 의해 움직여 온 대한민국이 진실의 역사를 대하게 된 것은 거의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부터라고 감히 주장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악랄한 기득권들의 공격에 처참하게 무너졌고 이전 독재정권을 계승하는 자들에 의해 거짓이 9년 동안 똬리를 틀었다.
촛불 혁명으로 제자리를 찾는 듯 하지만 사악한 검을 가진 그들은 예전의 영화를 되찾겠다며 여전히 눈을 부라리는 실정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을 유독히 미워하는 이유
노 대통령은 고졸의 학력을 가진 인권 변호사다.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민중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고 노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를 실천하려 했다.
과거부터 기득권을 가졌던 세력들이 볼 때는 위험천만하다고 여겼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야당의 중진은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겠다’며 모욕을 줬다.
퇴임 후에도 기득권들이 ‘끝까지 죽여야 한다’며 달려든 이유는 ‘본때를 보이기 위함’이라고 한 전문가가 분석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덤비면 ‘나중에라도 큰 일을 당할 수 있어. 그러니까 모난 돌처럼 징을 맞으려 하지 말고 알아서 기어야 해’라는 암시다.
조국 전 장관은 경우가 다르다.
보수 색채가 강한 부산 지역 사학집안의 큰 아들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적 색채를 가지기는 했지만 서울대를 나왔고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 편이었어야 했다’.
또한 조국 전 장관이 가지는 상징성.
강남좌파로 일컬어지는 동시에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가 ‘없는 놈’들의 편에 섰으니 이념은 둘째로 치더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가 돼 버린 셈이다.
그러기에 더욱 미운 것이고 ‘가장 날카로운 칼’로 찌르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서 악당들이 주인공을 제압하지 못하면 그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에 이어 딸도 악당들의 협박과 칼 아래 놓여 있는 형편이다.
노 대통령의 정직과 청렴에 칼을 댔던, 그들은 조국 전 장관의 급소에 비수를 꽂고 있다.
이를 어떻게 견뎌 나갈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역사는 왜 이렇게 잔인하게 전진하려 하는 지.
강물은 간혹 막혀 멈추는 듯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바다에 이른다.
그 믿음만이 오늘의 분노를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에 먼 산만 바라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