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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3전국화? 이름부터 짓자

4.3평화 공원의 백비. 언제까지,,,

제주 4.3, 71주년이 이틀 앞이다.

 

지난해와는 달리 남북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이라 참석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유족. 도민들과 아픔을 나눌 예정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4.3은 입으로 꺼내기조차 불편했던 현실을 딛었고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과도한 공권력으로 도민들에게 피해를 준 사실에 대해 사과했다.


4.3평화공원에 있는 백비, 나중에 이름을 짓는다고 했지만 그 시점은 언제? 누가? 비겁함 속에서 세월만 간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4.3 추념식을 외면했으나 도민들은 그러려니했다.

 

사실 아픔을 나누려는 마음이 없는 조문객을 받아봐야 상주 입장에서는 딱할 노릇이기에 차라리 잘됐다는 도민들도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70주년에 도민들과 아픔을 같이했고 지난날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4.3 지난날 규정된 촉발된 시점이라는 해석에 불만있다

 

제주 4.319473.1일 관덕정 발포사건에서 기인했다.

 

기마경찰은 무도하게 말발굽으로 아이를 다치게 한 후에도 유유자적 현장을 피하려 했고 이를 본 3만 군중들이 흥분하여 이 경찰의 뒤를 쫒았다.

 

당연한 제주인들의 항의에 실탄을 발사한 경찰들, 마치 계엄령을 해제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외치던 광주시민들에게 발포한 공수부대의 모습과 같다.

 

이후 도민들은 총파업에 돌입, 경찰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경찰 등은 거꾸로 도민들을 잡아 가둔 후 고문을 일삼았다.

 

이 과정에서 어린 학생 2명이 숨을 거뒀다.


4.3 비극의 한 단면(제주4.3평화공원 전시사진)

 

19876월 항쟁 이전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꽃잎처럼 떨어졌듯 말이다.

 

이에 도내 청년들은 빈약한 무장을 지닌 채 도내 경찰지서 등을 습격했고 경찰관과 가족. 우익인사 10여명이 죽었다.

 

이 때문에 194843일을 4.3의 시발점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좌.우익의 대립이라는 시각을 더했다.

 

지금도 이 분석은 유효하다.

 

극우보수적 시각을 가진 인사들은 이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빨갱이들이 공권력인 경찰지서를 습격해서 촉발된 폭동이라고 폄훼하고 있다.

 

그래서 4.3이라는 이름도 왠지 마음에 안든다.

 

차라리 3.1로 규정했다면 당시 도민들의 희생을 보다 넓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승만 정부가 그렇게 했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4.3의 전국화? 그렇다면 여수.순천 항쟁도 같이 다뤄야 한다

 

4.3을 얘기하려면 당시 9연대 김익렬 연대장도 떠올려야 한다.

 

그는 저항세력의 지휘자격이었던 김달삼과 구억초등학교에서 담판을 지었다.

 

도민 희생이 커지지 않도록 평화협상을 맺은 것.

 

그는 4.3의 진행과정을 도내에서 봐왔기에 공권력의 무도함을 알았던 탓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면 본인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도 좋다며 김달삼을 안심시켰고 결국 협상은성사됐다.

 

하지만 본때를 보여 정권 획득을 하려던 이승만 세력들은 조병옥을 중심으로 토벌을 획책하면서 김익렬 연대장을 여수 14연대로 발령내고 만다.

 

그곳에서 김 연대장은 고립됐던 제주의 상황을 주변 장교들에게 상세히 설명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제주토벌을 명령받은 14연대는 이를 거부했고, 이는 여수. 순천 지역에 1만여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들이 목숨을 잃는 사태로 번졌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4.3은 이처럼 해방 직후 굵직한 사건과 연결돼 있으며 제주도민들만 희생된 것이 아니라 여수.순천 주민들은 제주도민과 마찬가지로 피를 흘렸고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와야 했다.

 

제주 4.3만 딱 떼어놓고 전국화. 세계화를 하자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는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점이다.

 

비겁한 후손들, 4.3 백비에 이름부터 새겨라

 

지난 지방선서 TV토론 등에서 사회자들이 4.3 관련 질문을 도지사 후보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다.

 

당연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들.

 

예산을 많이 따오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을 당부하고 등등.

 

4.3과 관련해서는 딱 하나만 물어보면 된다.

 

후보자들께서는 4.3 평화공원 내에 있는 백비(白碑)에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글귀를 적어 넣을 것인가.

 

그러면 해당 후보자의 역사관 등이 드러나고 4.3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 알게 된다.

 

그 질문이 나오기를 수 차례 방송토론에서 고대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한반도와 제주를 전혀 몰랐으면서 동북아 세력구축에만 매달렸던 미군정의 무지, 친일 경찰들의 부활, 잔인한 반공세력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권력욕이 작용하면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면서 발생했던 일에 왜 이름을 짓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또는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제주도민들은 항쟁을 택한 것이었다.

 

여수의 군인들은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며 제주출병을 거부한 것이다.

 

뚜렷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도 여전히 이름도 짓지 못하는 제주도와 관련 단체들은 전국화. 세계화만 외치고 있다.

 

이를 공식화해야 하는 의무는 제주도와 도의회에 있다.

 

지금이라도 논쟁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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