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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18 망언과 4.3의 미래

수구세력들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

최근 극우인사 지만원씨를 중심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이 정가의 첨예한 화두로 등장했다.

 

이들의 발언은 한 개인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받아들인 일부 국회의원들의 돌출행동일까?

 

그럴 리가 없다.

 

역사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잣대가 다르고 한쪽에 증오의 대상을 둬야만 존재이유가 있는 세력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한 것은 오래됐고 다시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싶다.

 

도올 김용옥이 역작이라고 소개한 우리는 너무 몰랐다라는 책 내용 중, 도올이 소개한 바를 보면 빨갱이라는 말의 등장 배경이 주목을 끈다.

 

해방 정국에서 동북아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던 미군정과 독립세력이나 민족주의자들과는 무관하면서 한반도의 반쪽 정권이라도 쥐려했던 이승만 세력은 친일파들을 다시 기득권으로 둔갑시켜 폭력적 하수인으로 서북청년단을 내몰아 제주인들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30만 인구 중 열명 당 한명 꼴인 3만명 가까이 희생됐다.

 

같은 동족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은 여수.순천 주둔 14연대는 동족상잔을 저지를 수 없다며 거부했고 이후 독재정부는 이들을 반란군으로 몰았다.

 

여수. 순천 지역 주민들은 6.25 직후 보도연맹 희생자까지 합쳐 15000명이나 피를 뿌리며 숨을 거둬야 했다.

 

이때부터 정부 말을 안 듣거나 의문을 표시하면빨갱이로 몰아댔고 이 소리를 듣는 국민들은 가슴이 철렁할 수 밖에없었다는 것이 도올의 설명이다.

 

이 정치적 상황이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빨갱이라고 지적하는 인사들의 정체와 뿌리를 더듬을 수 있다고 도올은 강조했다.

 

5.18망언과 제주 4.3은 과연 무관할까?

 

고 노무현 대통령이 4.3 추념식에서 과도한 공권력행사로 인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에 대해 사과한 이후 제주 4.3의 해결은 급격한 해결의 전환점을 맞는 듯 했다.

 

그러다 보수세력의 대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시 이제 4.3 해결은 힘들게 됐다고 평가하자 옆에 있던 한 후배 언론인은 이미 결정된 사항인데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을 흘린 이후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이르자 서울에서는 서북청년단이 재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무난하게 마치고 이후에도 보수 대통령이 집권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 볼 때 5.18과 제주 4.3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됐을지 아무도 짐작하기 힘들다.

 

4.3의 제주도민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의 호남 도민들이나 빨갱이롤 몰릴 직전에 촛불혁명이 터졌고 이들 극우 세력의 준동은 수면 아래로 잦아드는 듯 했다.

 

착각이었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숨만 죽이면서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이른바 역사 전쟁을 벌여 한판 승부를 보겠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나라를 망쳐도 표를 주겠다는 국민이 ‘20%’이상이라는 든든한 배경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접근방법, 그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법

 

근대 역사학의 거두는 1800년대 활약한 독일의 레오폴드 폰 랑케(Leopold von Ranke).

 

유시민이 서술한 역사의 역사라는 책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그는 근대 역사학을 정립한 저명한 학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대혁명이 추구한 공화제에 냉소를 보냈고 그냥 그대로 흘러오는 왕정을 찬양하고 기득권에 기대 학문을 연구한 인물이다.

 

역사는 그냥 우연히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고 유시민은 평가했다.

 

이에 대해 반론을 편 역사학자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영국의 에들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 Ted Carr).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의 발전은 민중의 점진적인 발전에 의해 이뤄진다는 역사관을 가졌다고 유시민은 분석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카의 역사책을 가지고 있으면 불온서적을 소지했다며 공안당국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영화 변호인에서도 관련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역사가의 시각을 거론한 것은, 5.18과 제주 4.3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도 연관이 있다.


돌이켜보면 제주4.3은 오랜 시간 '사건'으로 불렸다.


1948년 4월 3일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조종을 받은 일단의 무리들이 파출소를 습격하면서 비롯됐다고 말이다.


이 사실을 적은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거의 그렇다.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의 학살과 그로 인한 도민 총파업, 고문으로 숨진 3명의 학생 등은 흘렸다.


4.3을 사건이나 폭동으로 축소하려는 '권력자'들에 의해 적힌 역사기록은 널리 읽혔고 거의 그런 줄 알았다.


5.18도 그렇다.


당시의 유력 신문들의 논조를 보면 '폭동으로 인해 어지러운 광주를 군인들이 질서를 잡은 사건'들로 치부된다.


이 기록들을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한다는 '랑케'보다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분석하고 그 기록들이 옳은 지를 들여다 보는 것이 역사학자의 도리라고 했던 E.H카의 지적이 뚜렷하다.


5.18을 부정할 정도면 '제주 4.3은 결국 공산폭동'으로 몰고 간다


역사라는 측면에서 들여다 볼때 '광주민주화 운동의 부정'은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극우 수구들의 도발이라고 여겨진다.


이를 부정해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은 정당성을 얻게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이승만 국부론',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 등이 뾰족해진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주 4.3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고, 더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이기에 정부의 책임은 극히 적다는 논리로 이어갈 것이다.


5.18은 나라가 분열된 시기에 북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국충정에 불타는 일단의 군인들이 마지 못해 일부 시민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공권력을 사용한 것' 쯤이 되고 만다.


이 논리를 펴기 위한 시도는 종전 있어 왔지만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광주유공자명단공개'라는 카드를 들어 일반 국민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먹칠을 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도발이 성공하면 일단의 태극기부대에 다시 만들어진 서북청년단이나 유사 단체들이 힘을 보탤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들은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해방정국이나 1980년처럼 아무에게나 빨간 칠을 하려 들 것이다.


보수수구 세력이 정권을 잡는 날부터 '아마도 손가락 처형'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그들의 준동을 막아내는 것도 이 정부의 크나큰 의무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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