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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물론, 그 허망함에 대하여

'옳은 길을 가야 진정한 인물이다'

가난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난 한 영민한 아이가 있었다.

 

공부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집안인지라, 그의 부모는 일찍 그를 일가붙이 세도가의 양자로 보낸다.

 

25살 때 모든 사람들이 경원해 마지않는 국가고시에 합격’, 그는 출세길을 달렸다.

 

그가 처음 양부모님 집에 간 날, 양 어머니는 정성껏 밥을 차려 냈다.

 

고기를 질기게 씹는 듯한 모습에 양 어머니는 고기가 질기면 뱉어내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그는 한번 입안에 넣은 음식을 어떻게 뱉을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아이를 제대로 선택했다는 기쁨이었으리라.

 

벼슬길에 오른 후 그는 시대에 따라 변신을 거듭했다.

 

수구에서 처음에는 친미적이었다.

 

이후 친러시아 정치인이 되고 고종의 아관파천을 주도했다.

 

다음번엔 친일이 되어 고종 퇴위에 앞장섰고 결국 을사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친일파.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의 행적을 간추린 것이다. (출처. 이이화의 인물한국사)

 

그의 생을 줄이면, 처세술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백성을 위한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삶만을 살았다는 것.


또 한 사내가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힘들게 일류대학에 입학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전력탓에 취직도 쉽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고 이 나라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됐다.


심지어는 공중파에서 그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으로 거듭 출세했다.


지금은, 뇌물혐의로 교도소에 갇혔고 산자부가 검찰에 수사의뢰한 '14조원 자원외교 국고손실'의 지휘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십조원을 퍼부어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국토를 파헤쳤다는 비난도 그의 몫이다.


그는 이명박이다.


'개천에서 용난' 인물이라는 평가의 주인공이지만 '잘못된 인물'이 얼마나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지 증명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한사람이 있다.

 

처음처럼의 고 신영복(申榮福)교수다.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경상남도 의령의 간이학교 사택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산상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1965년 숙명여자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안병직 등을 따라 잡지 청맥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원'에 참석하면서 훗날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된다.

 

1966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으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이문규·김질락은 사형을 당했고, 그는 여러 차례 재판 끝에 무기징역형을 받고 안양과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19888·15특별 가석방으로 감옥에 잡혀간 지 2020일 만에 출옥했다.

 

같은 해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이름으로 발간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명저다.

 

성공회교수로 재직하다 2016115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던 그는 대전교도소 복역 시절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4년간 한 방을 쓰면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성공회대학교 재직 시절 그의 글씨와 그림으로 학교 달력을 만들 정도로 그의 붓글씨는 획의 굵기와 리듬에 변화가 많아서 '신영복체'·'어깨동무체'·'협동체'·'연대체'로도 불린다.

 

성공회대학교 퇴임 무렵 두산에서 브랜드명과 상표 글씨체로 시 처음처럼의 제목과 글씨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받은 1억 원을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당시 교육부 장관직을 제의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학에 복귀한 후 부총리급 예우를 받는 교육부 장관에 오를 기회였지만 그는 걷어차고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통혁당 사건은 결국 무죄였다고 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렸다.

 

세 사람 중 과연 누가 인물이었을까.

 

세칭 인물은 출세를 필요조건으로 꼽는다.

 

무슨 무슨 직을 지내야 하고 이 나라에서 어떠한 기득권을 가져야 인물이라 일컫는다.

 

똑똑하고 영민한 촌아이가 세도가의 힘을 빌려 장원급제한 후 지금의 외교부장관으로 출세한 이완용,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정상을 향해 달리며 주변과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든 이명박 전 대통령,  ‘옳고 바른길을 걷다 엄혹한 시대에 고난을 겪어야만 했던 신영복중 누가 인물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을사늑약의 공로로 일제강점기 시절 엄청난 권세를 누렸던 이완용의 후손들은 이름을 숨기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영어의 몸이 돼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 오랜 고초를 겪으면서도 옮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글씨는 우리 주변에서 마음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등불이기도 하다.

    

인물론’, 참 허망한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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