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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버스 노동자는 해고, 재벌은 석방

119일 아침, 2개의 뉴스가 상반된 얼굴로 국민들을 맞이했다.

 

광주법원은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를 해고한 회사 측의 처사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횡령이라는 자체가 노사간 신뢰를 잃게 했다는 논지였다.

 

이에 불복한 버스기사는 ‘2400원 계산을 실수했다는 이유로 수 십년 근무한 직장에서 내쫒느냐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법의 준엄한 잣대에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는 한 달이 지나면 입금되는 월급에서 비롯되는 당당한 가장으로서의 작은 행복대신 부당 해고판결을 받아야 하는 지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판결에 많은 네티즌들은 너무 가혹하다고 사법부의 냉정함을 비판했다.

 

또 다른 소식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온 국민이 멘붕상태인 가운데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 기각이었다.

 

최순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스포츠 등에 400억원 이상을 아낌없이 제공한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지원했느냐, 아니면 대통령의 압력에 못 이겨 돈은 낸 피해자 인지가 초점이다.

 

삼성은 3대 후계 구도를 마련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모했고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키맨역할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승계를 도와달라당부했다는 것.

 

그렇다면 국민들이 낸 돈을 수 천억원이나 손해 보면서 찬성에 손을 들어 준 국민연금이 왜 그랬는지를 따져야했고’, 특검은 이미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을 구속했다.

 

이를 종합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은 삼성의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것이고 삼성의 지원은 보은의 취지로 모아진다.

 

뇌물죄라는 시선을 받는 주요 대목이다.

 

특검의 구속영장은 여지없이 기각됐다.

 

삼성이 미르 등 최순실 일가에 지원한 규모는 400억원 이상이라는 것이 중앙언론의 보도내용이다.

 

물론 후계구도 완성으로 최소 8조원이상을 갖게 됐다는 일부의 분석이 맞다면 400억원은 재벌들의 계산법으로는 껌값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두 번 읽어도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법적 논리를 내세웠다.

 

특히 구속했을 경우에 생기는 경제적 영향이나 글로벌 기업이 겪게 될 고충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2400원 때문에 직장을 잃어야 하는 어느 가장‘400억원을 배팅하고도 사법부의 따뜻한 배려 속에 귀가를 서두르는 재벌을 보면서 진부하지만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이 떠올랐다.

 

88서울올림픽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881016일 국민들은 핏발선 눈으로 권총을 머리에 겨눈 채 절규한 남성의 말에 전율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그의 말보다 더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굵고 짧게 나타낸 표현은 지금까지도 없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사건은 권총을 든 남성이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며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권총을 든 남성의 이름은 지강헌(당시 34).

 

지강헌 등 25명의 잡범들은 198810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12명이 탈출,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이 과정서 호송교도관은 권총을 탈취 당했다.

 

이들은 형기를 마쳤지만 보호감호처분 명분으로 풀려나지 못하고 또 다시 옥살이를 가야 하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갔다.

 

지강헌의 경우 상습범이지만 556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보호감호 10년 등 총 17년형이 떨어졌다.

 

돈이 없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믿었던 지강헌 사건은 거의 30년전 일이다.

 

지강헌 이후 한 세대가 지나도록 비슷한 광경을 목도해야 하는 어느 쌀쌀한 겨울날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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