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추념일은 항상 정치의 고비에서 치러집니다.
4월에는 총선이 있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는 탓에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개최된 68주기 4.3 추념일에도 김무성 새누리 대표,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장,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 정의당 김세균 공동대표 등 정당 대표들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언론의 표현대로 여. 야 지도부가 총출동한 셈입니다.
정부측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박 대통령이 만일 해외 순방 중이 아니었다면 추념식에 왔을까요?
지난해는 리콴유 싱가포르 전 수상 장례식이 4.3 추념일과 겹치면서 오지 못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리콴유 수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부친의 친구 장례식에 참가했다고 중앙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4.3 추념일 이전 달인 3월이 되면 도민 사회에서는 ‘대통령 참석 여부’에 촉각을 집중 시키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지적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조문’을 가는 경우는 ‘평소에 친했거나 존경했거나 혹은 좋아했거나 지인들이 상을 당했거나’ 등입니다.
이 반대의 경우는 조문을 가지 않습니다.
억지로 떠밀려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부조만 보내는 수’도 있습니다.
왜 갑자기, 4.13 총선 이야기를 하면서 4.3에 관련한 ‘썰’을 푸느냐 하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4월 4일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4.3 사건은 남로당 무장 반란’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청소년용으로 제작. 보급한 만화책 ‘6.25 전쟁’에서 제주 4.3 사건을 ‘제주 남로당의 무장반란’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만화책 제주 4.3 내용
박물관은 이 만화에서 ‘1945년(1948년인데 만화에서는 오류를 기록)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반란이 일어났다.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전개했다’며 정부작전의 불가피함을 역설했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도민의 반발과정은 생략하고 남로당의 획책때문이었다고 단순화했습니다.
사태를 폭동으로 몬 뒤 ‘잘 진압했다’는 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은 사라지고 있다고 한 야당의원이 이를 비판했습니다.
이쯤에서 4.3 추념일에 참석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의 희생은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라며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던 사실과 비교해주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만? 이승만 국부론이 뿌리라는 분석
이명박 정부부터 이른바 ‘뉴라이트’가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도도히 흐르는 민주화의 물결 속에 엎드려 있다 ‘때를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지금 정부. 기득권 언론 등의 든든한 지원 아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선 이승만 국부론이 있습니다.
해방 정국에서 ‘반공을 국시로 한 이승만 정권이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만들려 합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 등이 적시된 헌법전문은 싹 무시합니다.
아마 ‘개헌’이 된다면 이 부분에서 치열한 논리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려면 이승만 정권 아래서 자행된 ‘제주 4.3 학살’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펴낸 만화책대로 정리돼야 합니다.
국부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빨갱이들의 난동을 효과적으로 처리’한 지휘자가 더 어울린다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제주도민에 대한 학살 행위를 기술한 역사교과서’는 눈에 가시 쯤인 탓에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고 이를 채택하는 학교가 거의 없자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다고 전문가들은 알리고 있습니다.
이승만 국부가 완성되면 그 이후의 일들, 보도연맹(제주도는 백조일손 묘) 사건, 국민 방위군 사건, 부정선거 등은 모두 제주 4.3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자칫 4.19까지 ‘국부를 쫓아 낸 잘못된 시위’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4.3 추념일에 쏟아내는 풍성한 말의 성찬들, 그러난 그들의 마음 속에는
황교안 총리나 김무성 새누리 대표도 ‘제주 4.3에 대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통탄하고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도내 새누리 후보들은 일제히 ‘4.3 희생자에 대한 재심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당 대표가 잘못됐다고 여긴다면 ‘당정협의’를 통해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을 치면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부가 밝힌 대로 ‘일부 시민단체의 탄원’으로 재심사를 해야 한다면 여당 대표의 위상이 시민단체만도 못하다는 얘기인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이제 대통령 참석여부를 놓고 왈가왈부 하지 맙시다.
매년 4.3이 오면 ‘대통령 참석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솔직히 조문이라는 것은 ‘오고 싶어야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유력 대선 주자들은 후보 당시에는 제주를 찾을 때마다 봉개동 4.3 평화공원에 먼저 갑니다.
‘물고기를 낚은 낚시꾼이 미끼를 주는 법이 있느냐’는 농담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화해와 상생, 피해자인 도민들은 이미 화해와 상생을 선언했고 이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반면 중앙 정치권과 그를 둘러싼 ‘뉴라이트’들은 화해와 상생보다는 ‘내편, 네편’을 일단 가르겠다는 각오를 엿보게 하는 행보에 집중합니다.
우리나라의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이었지만 제주도민들의 정신적 해방은 언제 인지 아십니까?
도의회에 4.3 특위가 설치된 1990년 중반부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그 전에 대 놓고 ‘제주 4.3’을 말하는 도민들이 있었습니까?
도의회와 시민 사회에서 ‘제주 4.3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해졌던 시점’, 그 시점을 저는 도민들의 ‘정신적 해방일’이라고 치부합니다.
4.3의 완전해결을 외치는 도내 총선 후보들에게
특히 여당 후보들에 말하고자 합니다.
어느 지역구에서 승리하든지 초선 의원으로 여당 의원이 됩니다.
원희룡 지사는 재선 이후에도 당시 한나라당이 내부에서 제기되던 ‘제주4.3 지원위원회 폐지’ 법안에 찬성표를 던져야 할 만큼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원 지사는 이에 대해 ‘법안의 자세한 내용을 몰랐고 당론이기에’라고 변명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초선으로 여당 의원이 된다고 치고 당론으로 제주 4.3을 몰아댄다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안 된다’고 반대할 각오가 돼 있으십니까?
‘찍혀서 다음 공천이 힘들어 지는 수’가 있어도 도민을 위해, 4.3을 위해 지금의 공약을 실천할 배짱이 있는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입니다.
68주년 4.3 추념식이 지나면서 앞으로 제주 4.3은 어떤 모습으로 가게 될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