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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자이자 음악평론가인 예총 강문칠 제주연합회장. |
나 보다 윗분들과의 대화에서는 인생에서 배울 점도 많고 내 자신이 가야할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나 아랫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배우는 것 보다 자신이 경험하거나 체험한 일들을 소개하고 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면서도 후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들이 쏟아져 나올 때에는 경청하게 되고 내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들의 대화 내용에 감사할 때가 참으로 많다.
필자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다. 내가 하는 일이 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예술 애호가들이 많다. 제주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술인생과 경험의 정도에도 그 경력이나 수준의 차이는 다양하다. 예술가들과 만나 대화를 할 때에는 예술에 관한 내용 보다는 제주사회 속에서의 예술발전이나 예술가들에 관한 주변일 들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떠한 경우 예술가들과의 대화 보다는 애호가들과의 대화가 훨씬 창의적일 때가 많다. 애호가들 중에는 교수, 언론인 등 전문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는데, 상호 대화 내용은 예술만이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스며 나오는 이야기 거리들이 즐비하게 솟아 나온다. 이러한 각자의 대화들이 서로가 소통이 되는 자리가 될 때에 대화는 점점 밝아지고 창조적인 것으로 진입하게 된다. 대화의 자리는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 자리가 되어서는 인된다.
세미나나 심포지엄처럼 어느 한 두 사람이 주제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자리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로운 자신의 입장들, 즉 이야기를 할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연령이 많은 인생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대화 내용에 관한 체험을 말하면서 결론에 이르는 경우를 간혹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직종에의 사람들과 나이가 각자 다른 경우 서로가 격의 없는 관계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대화 내용에 따라 관심 있는 분야가 나올 때에 적극적인 사람, 내가 잘 알지 못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내용에 따라서 대화에 참여하는 태도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관심이 있는 대화꺼리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말하는 사람,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 전혀 관심이 없는 주제일 때 자리에서 무관심하거나 참여를 할 생각이 없거나 자리를 뜨는 경우, 대화 내용을 바꾸기를 청하는 사람, 조용히 서로의 대화 내용을 경청하는 사람들, 내가 말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에 경청하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 등등 사람에 따라서 그 차이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학 시절 선후배들과 무수하게 대화의 자리를 경험하면서 술자리를 전전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시퍼렀게 살아 있는 시대, 밤 열한시만 되면 자리를 떠야하는 시대 속에서 진지한 대화들은 계속 되기를 원하였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대화의 자리가 깨지는 것을 참으로 아쉬워했다. 때로는 집으로 가야할 사람들은 가고, 아쉬운 사람들만이 남아서 어느 한 학생의 집으로 몰려가 대화를 계속 이어갔던 시절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이지만 아직은 사회경험이 없는 학생 신분이라 서로가 덜 익은 상식과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 그리고 자신이 겪은 체험에서 비롯된 비교 분석과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들이 고작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언제나 선배가 있어 대화의 자리를 선도하곤 했다.
대화의 자리가 창의적이거나 살아 움직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해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리를 함께하는 모두의 관심과 대화를 즐겨하거나 서로에 대한 신뢰가 소통이 되는 자리어야만 가능하다. 간혹 대화의 내용을 바꾸어서 한 사람씩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방법이 된다.
그 좌석에서 연장자인 사람이 때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후배에게 말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 술 좌석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이쪽저쪽에서 끼리끼리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이 나오는 것은 대화 내용에 별 관심이 없거나 그들만의 대화가 필요한 경우이다.
어떠한 사회에서도 일방적인 것은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소통이 필요한 것은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며, 말을 하지 않는다 하드라도 관심 분야이거나 대화의 자리가 흥미로울 때에 참여자들의 관심은 계속되어질 수 있다. 소통의 중요함이 사회의 이슈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소통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인 시냇물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자유롭게 행하는 강물 같은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통하는 움직임이야 말로 진정 살아있는 소통의 방법이며 진정 우리가 가야할 대화의 길이다.
강의실이나 학교의 교실이나 학원에서는 원리원칙이라는 일방적 교육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교육은 인간이 인생에서 살아가야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나 기초 교육을 전하고 가르치는 곳이지만 사회는 대부분이 위와 아래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신뢰가 통하는 우주의 범주 안에서의 관계들이다. 대화를 하는 자리와 사회가 학교교육과 같이 일방적인 교육의 장이어서는 대화와 소통은 시들하거나 대화의 자리를 뜨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위에서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선택적 홍보만이 아니라 아래에서의 주장이나 반응을 헤아리고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있을 때에 소통의 목표가 실천되는 것이다. 위와 아래라는 그 중간 지점에 있는 대화의 자리, 대화의 내용이 점점 흥미로워지는 자리, 또다시 그러한 자리가 그리워지는, 그래서 그러한 자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많아지고 그러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대화를 자꾸 반복하다 보면 대화의 내용과 참여자들의 수준도 점점 좋아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