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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대 교수 겸 작곡가인 강문칠 한국예총제주도회장 |
관사에 살았던 곳은 흥산과 시흥초등학교 시절이다.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5, 6학년을 보냈던 시흥초등학교이다. 운동장 끝으로는 담을 쌓아 있었는데 동쪽의 담 밖은 양어장이고, 양어장을 지나면 바다와 연결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을 담게 한 시절이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 양어장에는 숭어의 치어(鯔魚)들이 꽁꽁 얼어 덩어리가 되어 있을 때에 치어 덩어리를 가져다가 온돌방에 조그마한 멍석 같은 넓은 깔판에 얼어있는 덩어리를 놔두면 어름은 이내 풀리고 치어들은 마치 멸치처럼 볕에 말려 씹어 먹었던 추억, 양어장에는 철새들이 많이 날아와 먹이를 찾곤 했는데, 동네의 형들은 콩 속을 후벼 속에 극약(싸이나)을 조금 넣어 촛물로 구멍을 봉한다.
봉한 콩들을 양어장 모래 위나 마른 흙 위에 뿌려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에 돌아보면 오리들이 죽어 있고, 오리의 창자를 버리고 오리 고기를 삶아 맛있게 먹었던 추억, 여름이면 바다에 나가 물이 빠진 모래를 두발로 발 양쪽으로 왼쪽 오른 쪽을 모래 밑을 후비며 뒤로 조금씩 움직이면 예쁜 형형색색의 조개들이 밟히기도 하고 모래 밖으로 튀어 나온다.
대야에 조개를 모아 집에 와서 조개를 구어 먹기도 하고 삶아 먹기도 했다. 관사에 살았기 때문에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풍금이 있는 교실을 찾아 혼자서 열심히 반주를 하면서 힘차게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장 선생님이신 부친의 후광이 있었던 덕택이다. 시흥리에는 두산봉(頭山奉, 멀뫼라고 부르기도 했음)에 올라가서 병정놀이로 해 가는 줄도 모르게 신나게 뛰어 놀았다.
서산에 해가 질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멀리 성산포의 일출봉과 우도 그리고 해안선이 고운 시흥리의 해안가는 마치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을 품에 안고 살았던 시절, 서귀포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집이 신작로 바로 옆에 있었고, 길 건너에는 온통 논밭이었다. 논밭이 지나 남쪽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고, 서귀포 중심에 위치한 문섬과 새섬이 집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동쪽에는 소남머리, 정방폭포, 소정방이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집 바로 앞에는 전분공장이 있어 고구마들이 자그마한 오름처럼 가마니나 그물로 엮어진 고구마들이 트럭에 실려 밤새도록 공장 앞, 뒷 마당에 쌓여 있다. 밤에 고구마 서리를 하기 위해 새벽을 기다렸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훔쳐 고구마를 쪄서 먹었던 추억들, 소남머리에서는 바다가 바로 붙어 있는 언덕을 타서 내려오면 남녀가 구분이 되는 용천수가 콸콸 쏟아져 내려 매일 아침이면 냉수마찰 하는 것이 유행처럼 수건 하나만 목에 걸치고 신나게 다녔던 추억, 온 몸에 냉수마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왜 그리도 상쾌한지, 그러한 기분을 매일 느끼고 싶어 어린 시절에도 잠에서 깨면 당연히 발걸음을 소남머리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높은 언덕 위에 동네 어떤 형이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방송에서 귀하게 들었던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먼 훗날 그 분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었던 테너였음을 알게 되었음. 겨울 방학이라 잠시 고향 서귀포에 머물고 있었던 것))에 이끌려 가까이에 다가섰던 또렷한 추억, 그날 이후에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로 매일 아침 소남머리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들떠 있었고 그 후에는 그 형을 만나 볼 수 없었다. 또한 어느 날,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고 있을 때에 어디선가 신나고 활발한 음악이 들려와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허겁지겁 쫓아 다녔는데, 가까이에 가서 보니 해병대 군악대의 시가행진 모습이었다.
번쩍 번쩍 햇빛에 반사되는 모자(화이바)와 악기들, 칼날처럼 각이 세워진 복장들, 좌우로 질서정연하고 절도 있는 행진의 모습에 나는 어쩔줄 몰라 흥분과 감동에 파묻혀 대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가다시피 쫒아 다녔다. 목적지는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날은 민군합동 공연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위한 시가행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함에도 나는 그 자리를 전혀 떠날 수 없었다. 밤늦게 까지 계속된 음악회, 나는 왜 그리도 흥분이 되는지, 미칠 것만 같이 혼자 좋아서 귀가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경험한 음악과의 깊은 경험들은 음악을 접촉하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못한 시절이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음악에 대한 추억들이 뚜렷하게 나의 마음 속에 살아 있고, 5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작곡가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추억과 예술 사이에는 어둠에서 불을 밝히 듯 악상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방황하는 나에게, 추억은 전류를 흐르게 하여 등불에 불을 밝히 듯, 전선(電線)처럼, 아니 예술의 영양분을 공급하게 하는 저장고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 평생을 음악과 관계하면서도 지금도 마냥 좋은 음악, 너무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어서 더욱 열정과 최선을 다 하게하는, 피곤하지도 않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자의 행복감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음악으로 모두 연결 되지는 않아도 생생하게 되돌려 보는 오래된 추억들은 오늘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추억의 앨범을 넘기듯이 조심스럽게 또렷한 기억을 되 살려 본다. 간혹 이러한 회상들은 슈벨트나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한 장 한 장, 천천히 추억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