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가(街)의 사색

  • 등록 2008.11.12 14: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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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올라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쌀쌀하다. 늘 하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에는 다른 날 보다 일찍 일어나서 주변 언덕을 걸어 본다. 이미 제주의 억새들도 윤기를 잃어버린 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름답게 물들었던 단풍잎들은 더욱 진한 갈색이거나 낙엽이 되는 깊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찬 기운을 느끼며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올 껄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제주시에서 서쪽에 위치한 고성 2리 주변이다. 해발 400고지이기에 제주시 보다는 기온이 평소에도 3,4도 정도 낮다. 높은 언덕 높이에는 제주의 북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서 나는 여기를 자주 오곤 한다.

어제까지 흐린 날씨는 벌써 겨울의 문턱에 온 듯한, 시간의 빠른 속도감에 머리가 어지럽다. 아침에 잠시 감상했던 쇼팽의 녹-턴을 들으면서 착 가라 앉은 마음은 지금도 계속이 된다. 나이가 들어 60이 가까워진 요즈음은 음악을 들으면 왜 그리도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가득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전시장과 공연을 감상했다. 전시장과 공연장을 찾으면서 바쁜 시간들 속에서도 나름으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제주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 젊은 청년작가들과 마음껏 예술에 대하여 토론도 하고 싶고 새벽까지 술을 비우고 싶은 욕구도 많다.

자신과의 약속한 일들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옭아매는 경우가 많아 이미 이러한 사명과 책임감에서 멀리 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쇼팽의 음악을 듣고 난 후에는 자신을 돌이키는 시간이 너무나도 호사스러움을 느낀다.

그저 안에서 북 바쳐 오르는 슬픔과 집착했던 이기심에서 해방의 순간을 언제나 나에게 선물하는 쇼팽, 마치 언제나 나를 기다리면서 그저 위안과 안식을 너그럽게 던져주는 쇼팽, 나는 이 순간순간들이 행복한 사람인 것을, 누구도 알 수 없는 행복의 시간을 나는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잠시 정리해 본다. 이러한 행복감과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경험들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이 일에 몰두하는 것은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을 해 왔음이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는 부딪히는 일도 많았고, 자신과의 투쟁도 많이 한 셈이다. 그러나 이제 언덕 위에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잘 마무리 하자,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오늘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중에 나도 한 사람이 아닌가, 모두가 현재를 살아가는데 나는 왜 미래일까? 라는 생각은 이미 너무나 자주 반복되어 온 생각이 아닌가...

오늘 아침 언덕에 올라 찬 공기를 맞으며 생각하는 내 자신은 그래도 열심히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나의 이익을 매몰되지 않았음을 또 다시 확인하는 일, 쇼팽이 아니었으면 이러한 사색도 하지 못했을 거라는 감사함과 아침에 멀리 제주의 북쪽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 살아있기에 하루를 준비하는 사색의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강문칠 기자 mck@ct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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