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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이약동 목사를 통해보는 청렴의 의미, 서귀포시 체육진흥과 배경진

청백리 이약동 목사를 통해보는 청렴의 의미

 

서귀포시 체육진흥과 배경진

 

 



제주도에는 15세기 조선초 청백리 이약동(李約東)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약동이 제주목사로 선정을 베풀고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 재임중에 착용했던 의복이나 사용하던 기물들을 모두 관아에 남겨두고 떠났는데, 한참 동안 말을 타고 가다보니 손에 든 말채찍이 관아의 물건이었다.

그는 즉시 채찍을 성루 위에 걸어놓고 서울로 갔다.


후임자들이 치우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걸어놓고 모범으로 삼았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채찍이 썩어 없어지자 백성들이 바위에 채찍 모양을 새겨두고 기념하였는데, 그 바위를 괘편암(掛鞭岩)이라 하였다. 산천단을 만들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준 이약동 목사는 연려실기술에 '성종조의 명신'으로 올라와있는 청백리였다.

그는 제주 목사시절 조정에 건의하여 세금을 감면받도록 했고 휘하 고을 수령들이 사냥할 때 임시거처를 지어 민폐 끼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약동은 만년에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면서도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다. 그는 진실로 제주를 사랑한,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육지인이었다.

소설 한강을 보면 60-70년대 공무원들의 다양한 부패상들이 나온다. 공무원들은 돈있는 사람들의 편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쥐여주어야 일이 되는 것이 당연시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이 원래 그런거라고 돈 없는 게 죄라고 당연히 생각한다. 시민들 편에 서는 공무원은 찾기 힘들고 법위에 군림하며 권력자들의 편에서는게 자연스러웠던 그 당시의 사회모습을 보면서 지금 어디서나 청렴을 강조하고 그게 어떤 가치보다도 빛나는 기본 덕목임을 되새기는 지금은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청백리 이약동 목사가 후손들에게 남긴 훈계의 시를 한번 되새겨보자. 하늘이 높고 산책하기 좋은 청명한 가을 어느날에는 이약동 목사가 한라산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얼어죽는 사람이 안타까워 조성한 산천단을 거닐며 다시한번 청렴의 각오를 다져보는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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