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을은 예초기 소리와 함께 온다.
더위에 헉헉거리던 제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고 벌초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하늘도 가을을 알리며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보내준다.
수십년 전 '예초기를 가진 가족은 일본에 가까운 교포 친척'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
자가용도 거의 없고 제주 중산간을 걸어 다니며 벌초를 하던 시절, 누구나 마찬가지로 낫만 들고 다녔다.
벌초 한 두자리하면 다시 한참 걸어 다른 조상묘를 찾아 나서곤 했다.
지금처럼 가족묘를 조성한다든지, 가족 납골묘를 만들거나 하는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묘소를 찾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시절, 가끔 예초기를 사용하는 벌초객들이 있었다.
한참 풀을 베다 허리를 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도구였다.
국산 예초기가 없던 때라 벌초에 참가하지 못하는 점을 미안하게 여겼던 일본거주 교포 친척들이 보내준 예초기가 대부분이었다.
24일 중산간에서 벌초에 나선 가족들, 윙윙 대는 예초기 소리는 제주의 가을을 알린다
형편이 되는 일본교포가 친척 중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웅웅 거리는 소리'였던 셈.
지금 모듬벌초를 볼 양이면 상당수의 예초기가 풀을 깍고 낫을 든 벌초객들은 일을 하는 듯 마는 듯 한다.
그저 풀이나 나르면서 친척들과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일본보다 50년 뒤진 기술력이라 외치는 정치인,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시절 일본제 '코끼리 밥통'은 모든 주부들의 로망이었다.
몇 몇 주부들은 밥통계를 만들어 돈이 되면 이를 일본교포에게 보내고 코끼리 밥통을 자랑스럽게 주방에 올렸다.
이 시절, 일본제라면 '고급지거나 혹은 우리로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만큼 세련된' 그런 상징이었다.
그런 차이가 이제는 상당히 좁혀졌거나 거의 없다.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가 장악했던 전자제품 생산규모도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를 대한민국이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일본과 경제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살펴보니 2011년부터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일본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엄청난 흑자를 70년 이상 기록하고 있다.
작년 한해만 해도 750만명 이상 관광객이 일본 지방경제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본에 머리숙이고 피해를 줄이자는 '토착왜구'들, 예초기에 놀라 튀는 메뚜기 마냥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침략에 불매, 일본 관광 안가기 등으로 맞서고 있다.
'개싸움은 국민이 할테니 정부는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구호도 나왔다.
정부는 당당하게 2016년 맺은 일본과 군사정보협정인 지소미아 연장을 거부, 주권국가임을 알렸다.
안보를 핑계로 수출 규제를 획책하는 일본에 대해 '안보가 목적인 군사정보교환을 할 명분이 없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한 정치인은 '우리가 일본 기술에 50년이나 뒤진 입장'이라고 일본에 강경한 정부정책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의 발언의 뒤를 이어보면 '50년이나 뒤진 주제에 왜 일본에 덤비나, 얼른 대통령이 가서 머리를 숙이고 일본에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고 우리의 반발은 '철없는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퇴역장성 모임은 '절대 안되는 일이라며 이 협정을 존속시키지 않을 경우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이 협정이 맺어지기 이전인 2016년까지 우리는 어떤 처지였다는 말인지 모를 노릇이다.
윙윙 돌아가는 예초기에 놀라 튀어 다니는 메뚜기와 온갖 벌레들 처럼 이 시국에 두더쥐 게임처럼 얼굴을 내미는 토착왜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본제 예초기를 부러워하던 시절도 분명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3.1운동, 4.19,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을 이끈 현명한 국민들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벌초하듯 숨죽여 일본에 충성하던 토착왜구들을 이 참에 베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