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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원희룡 후보 고해성사, 이해돼?

보수 정당 소속 당시 행적, 아직도 의구심

원희룡 무소속 후보는 누구나 알 듯 보수정치인이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에서 3선을 지냈다.

 

당내 개혁 세력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는 보수의 본류를 자처하는 당에서 잔뼈가 굵었고 명성을 빛냈다.

 

그런 속에 연합고사 전국 1, 사법고시 수석합격 등의 전력을 더해 특히 보수적 성향의 제주도민들에게 그는 성공하고 앞날이 기대되는 정치인이자 도민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했다.

 

언제부터 인지 차차기 대선주자라고 불렸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를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울 중앙정치에서 잘 나갈 것 만 같던 그가 이젠 제주도지사로 재선에 나섰고 도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보수정치인인 그는 이제 무소속 신분으로 심지어는 민주당 입당TV토론에서 거론했다.

 

당장 민주당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원 후보 자신은 모른 척하고 있다.

 

보수에 반감을 갖는 중도층 유권자들에게는 효과적이라는 멘트라고 한 정치전문가가 분석했다.

 

원희룡 후보는 친이()였을? 친박()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원희룡 후보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른 이유를 추측한다면 3선을 지냈으나 정치적 상황이 변해  4선 공천이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풀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정권은 친이계 정치인들에게 혹독한  총선 공천잣대를 들이댔고 그 대상 중 한명이 원희룡 후보였다는 풀이가 그것.


2014년 박정하 정무부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악수하는 원희룡 후보.

박정하 부지사는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이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원 후보는 고향인 제주를 찾았고 마침 민선시대 이후 도내 정치상황에 염증을 느끼던 도민들의 마음을 사게 됐다.

 

사실 원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좀 있다.

 

한나라당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던 원 후보는 2011년 당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나는 특정 계파의 사람이 아니다. 지난번 경선은 이미 지나갔다. 새로운 정권창출을 위해 전혀 새로운 치열한 경쟁과 아름다운 승복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원 후보의 당대표 출마는 이명박 청와대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는 추측이 일부 중앙언론에 의해 보도 된 바 있다.

 

또한 원 후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도지사에 선출되자 초대 정무부지사로 박정하 전 이명박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임명하기도 했다.

 

, 이명박 정치적 추종자들에게 도민들의 혈세로 월급을 줘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이 정도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암시하지만 그는 뚜렷한 계보에 몸을 담지 않았다고 아직도 주장한다.

 

전두환에게 세배한 그의 행동, 여전히 해명이 부족하다.

 

200712일 그는 전두환씨를 찾아 세배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예의를 표하는 중 전두환씨는 그중 한명 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2007년 전두환씨에게 세배한 직후 원희룡 후보 홈페이지.

'잘했다'는 댓글과 '고향에 오지말라'는 반박글이 동시에 올라 있다


 

이와 함께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자각,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전두환 군부에 반발해서 빛나는 앞날을 포기할 만큼 확고했던 그가, 전두환씨를 찾아 세배한 정치적 행보 속에는 무엇이 존재할 까는 궁금증마저 든다.

 

학생운동을 했지만 보수정치를 하는 마당에 전두환씨에게 세배하는 행위는 당연하다 여겼을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의례적인 행사에 불과했을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 4.3지원위 폐지법안 서명 '당론이기 때문에?'


원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파동이 있었을 당시, 보수야당의 일원으로써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후회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율사이면서 전국에서 수재로 알아주는 그가, 단지 당론이기 때문에 찬성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은 좀 부족하다.


수재라면 그 탄핵안이 암시하는 정황을 읽어내야 하고 이 시대를 삶아가는 젊은 정치인으로 소신을 내비쳤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4.3지원위 폐지법안에도 서명했다.


비록 본회의에 오르지 않아 사문화된 법안이지만 제주인으로, 자신이 주장하듯 4.3 유족으로서 행동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당론이 시민과 제주도민의 가치를 앞선다는 판단때문이었을까?

 

국회의원 12년 시절, 한번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원희룡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 공약으로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4.32010년대 들어 일어난 일이 아니다.

 

1948, 무려 70년 전으로 4.3 1세대와 2세대 도민들은 수십년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4.3 70주년 행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 원희룡 후보.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길을 걸었지만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원 후보는 검사로 활동했다.


 

고문을 당한 손이삼촌의 현기영 선생’, 협박을 받은 ‘4.3특별위원회의 장정언 전 도의장’, 눈물을 흘리며 4.3을 파헤친 도민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지원 등에 힘입어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도민들은 수 십년 세월 연좌제에 묶여 영혼을 말살당하기에 이르렀다.

 

남몰래 제사를 지냈고 4.3 추념일에는 가슴속에 피눈물을 흘렸다.

 

4.3 추념제가 공식화 된 이후에도 제주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는 원 후보는 아픔을 도민들과 같이 하지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는 본인도 큰아버지가 4.3 희생자로 유족이라는 말로 이에 대한 비난을 비껴갔지만 그럴수록 더 찾아야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에는 묵묵부답이다.

 

4.3 시민 활동가는 원희룡 도정에 비판할 일이 하나도 없다, 왜냐고? 4.3 정책이 전무한 탓에 잘했다. 못했다 하기가 힘들다고 꼬집었다.

 

원희룡 후보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짐작해 본다면

 

정치전문가들은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보수를 재편하는 정치개편 회오리가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시기는 당장 혹은 2020년 총선 1년 남긴 시점 등이다.

 

어쨌든 보수정계 개편은 분명해 보인다.

 

보수궤멸을 막기 위해를 이유로 이뤄지는 정계개편에 원희룡 후보는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된다.


6.13지방선거후 보수재편이 예상되는 가운데 원희룡 후보는 그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중앙정치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변신했어도 바른미래당은 일절 비난을 삼가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자유한국당도 직접적으로 욕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어차피 우리 편인데, ‘감정 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로 풀이된다고 정치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제주도지사로 재선되면 아마도 원 후보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볼 때 TK를 빼고 촛불혁명과 한반도평화시대에도 자리를 지킨 유망 정치인인 탓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이 자원으로 삼기에 너무 적절한 포지션이다.

 

낙선돼도 불쏘시개쯤은 된다.

 

3선의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유력 정치인이 자신들의 진영에 가담한다면 보수 본류는 우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원희룡 후보는 향후 보수정치개편에서 한몫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효용가치가 크다.

 

적어도 이 나라의 보수정치계에서는 말이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을 이끌고 파리를 해방시킨 드골은 말했다.

 

악마가 고해성사실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때그때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하며 변신하는, 정치인들을 향해 꾸짖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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