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최근 정치판에서 블랙리스트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야권의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감’이라는 발언도 터져 나오는 만큼,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대하는 각 당의 시각은 예상그대로.
새누리당은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일축했고, 더민주. 국민의 당 등 야당은 ‘독재정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현아 대변인은 14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블랙리스트’ 관련 음모의 실체는 밝혀져야 한다”며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정부 흠집내기용 낭설에 불과했음이 밝혀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유송화 부대변인은 14일 새누리당 김현아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회의록부터 보고 논평하라”며 반박했다.
유 부대변인은 “국감 자료로 제시되었던 회의록과 녹취록을 먼저 보고 말해야 한다”며 지난 2015년 5월 29일자와 11월 6일자 예술위원회 회의록을 제시했다.
해당 회의록에는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안져서 직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결국 그분도 심사에서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애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습니다” 등 예술위원회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14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선두에 김제동씨가 있나’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 모 의원은 어제(13일), 14일 국감에서 김제동씨 영창발언의 진실을 밝힐 것이라 예고했다”면서 “참으로 할 일 없는 국회의원”이라고 지적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개그맨이 쇼에서 한 발언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게 국정의 주요 현안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선두에 김제동씨가 있어서 탄압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국방위 위원이 국정감사에서 할 일은 파도파도 끝이 없는 부정, 부실 방산사업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은 무시무시하다.
한마디로 권력에 찍힌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 우리는 말 그대로 정적(政敵)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자신과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힘을 이용해서 불이익을 준다’는 행위가 인정받을 수는 없다.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권력은 ‘공명정대해야 하고 사적으로 사용돼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로마의 휴일’의 작가, 블랙리스트의 한 명이던 달톤 트럼보(Dalton Trumbo)
미국에서 매카시 광풍이 불 무렵인 트럼보는 1947년 ‘반미 활동에 관한 미의회위원회’에서 공산주의와 연류됐다는 혐의에 대해 증언할 것을 거부한 ‘할리우드의 10인 중’ 한명이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했던 트럼보는 매카시즘에 의해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결국 1950년에는 수감, 11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트럼보는 1937년 영화계에 뛰어들어, 1940년대에는 〈키티 포일 Kitty Foyle〉(1940)·〈도쿄 상공에서의 30초 Thirty Seconds over Tokyo〉(1944)·〈우리 포도는 달콤했다 Our Vines Have Tender Grapes〉(1945) 등의 영화 대본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에 그는 공식적으로 집필을 할 수 없었다.
전 미국을 감싼 ‘미친 반공주의’와 선봉에 선 이들은 트럼보와 계약하는 영화사를 협박했고,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영화사들은 그를 기피하기에 이른다.
영화로 제작된 ‘트럼보’에서 트럼보는 ‘가족을 지키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 속에 가명으로 30편의 대본을 썼다.
로버트 리치라는 이름으로 쓴 〈용감한 사람 The Brave One〉(1956)으로 아카데미상을 탔지만 로버트 리치는 가공의 인물인 탓에 시상식 장에 나타나지 못한 것으로 영화는 그렸다.
1960년 서사적인 영화 〈엑소더스 Exodus〉·〈스파르타쿠스 Spartacus〉로 최대의 찬사를 받았으며, 우리가 명작이라고 여기는 ‘로마의 휴일’도 그의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스파르타쿠스 주연을 맡은 ‘커크 더글러스’가 ‘미친 반공주의자’들의 협박 속에 트럼보와의 대본 계약을 이었다.
영화내용도 반공주의자들에게는 ‘환장하는 것들’이었다.
로마의 검투사가 ‘로마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항의, 반란을 일으켰고 나중에 평정은 되지만 주인공인 ‘스파르타쿠스’를 영웅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재향군인회 등 매카시즘에 찬동하는 단체들의 항의 시위 속에 영화는 시사회를 열었고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시사회를 본 후 ‘영화에 극찬’을 하면서 할리우드의 매카시즘은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카시즘이 사라지지 않았던 미국 사회에 트럼보는 얼굴을 드러냈지만 ‘반미 활동에 관한 미의회위원회’는 197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다는 것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을 부른 밥 딜런 (Bob Dylan)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올해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싱어송라이터겸 시인인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노벨상 한림원은 그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표현했다.
주옥같은 노래를 부른 그는 1963년 두 번째 앨범인 ‘더 프리 휠링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으로 저항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블로잉 윈더 윈드 (Blowin’ in the wind) 등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은 1960년대 미국 반전과 시민 운동의 상징처럼 새겨졌다.
당시 미국은 어떤 상황이었나.
끝도 모를 베트남전을 벌이며 전 세계 지성들의 비판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반전 데모’로 골머리를 앓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미국의 전쟁 승리라는 구호가 그 이전 매카시즘처럼 미국을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속에서 반전 노래를 불렀던 밥 딜런이 한국에 살았다면이라는 가정이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다.
거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노벨상은커녕 활동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소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트럼보, 밥 딜런이다.
우리는 언제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스스럼없이 말 할 수 있을까.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